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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핑크빛 에로영화속에도 꿈과 열정이 숨어 있다

입력
2010.11.0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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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이다. 지난 5일 서울 사당동 멀티플렉스 씨너스 이수에서 개막한 제8회 핑크영화제 상영작들은 제목부터 남다르다. ‘아저씨 천국’은 귀여운 축에 속한다. ‘젖소 며느리의 전원 로망’ 등 더 강도 높은 제목의 영화가 상영 중이다. 여성만 볼 수 있었던 지난해까지와 달리 ‘남녀혼탕’이란 이름으로 남성 관객들의 관람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영화제 공화국’이라는 비아냥이 곧잘 들리는 국내 영화계에서 가장 이색적인 영화제 중 하나다.

핑크영화는 50년 전통을 지닌 일본식 에로영화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촬영기간 3~5일에 제작비 300만엔, 상영시간 60분에 5회 가량의 침실장면 등장이라는 룰만 지키면 감독에게 모든 걸 맡기는 좀 별스런 제작 방식으로 유명하다. 자율성을 강조하는 핑크영화의 토양은 예기치 않게 일본영화의 재목들을 키웠다. ‘피와 뼈’의 재일동포 감독 최양일, ‘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 ‘도쿄 소나타’의 구로사와 기요시 등이 젊은 시절 핑크영화를 만들며 재질을 다듬었다. 영화평론가인 데라와키 켄 전 일본 문화청 문화부장이 이번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를 자청한 이유이기도 하다.

5일 개막식에는 많은 한국영화계 인사들이 찾았다. 특히나 독립영화 제작자와 감독들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개막식 뒤 허름한 연탄구이 갈비 집에서 열린 개막기념 파티에서 그들이 나눈 대화의 일부. “제목처럼 영화가 그리 끈적끈적하진 않더라. 그렇게 못 만든 게 아니라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 것처럼 보인다.” 은근한 부러움과 존경심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핑크영화의 전성기는 역설적이게도 1970년대 일본영화의 불황과 함께 찾아왔다. 대형 영화사였던 니카츠가 도산을 면하기 위해 ‘로망포르노’라는 이름으로 에로영화 대량 생산에 나서면서 일본영화의 큰 물줄기를 형성했다. 많은 일본 영화인들이 그렇게 ‘보릿고개’ 앞에서 밥을 택했지만 예술적 자존을 버리진 않았다.

한국 영화계가 아직도 불황의 터널에 갇혀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지난해까지 저예산을 지칭하던 10억 영화는 이제 대작에 해당한다”는 자조 섞인 농담까지 떠돈다. “어두운 미래 때문에 영화판을 아예 떠나는 인력이 허다하다”는 암울한 소식이 들리고, “지금은 잘하는 것보다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는 한탄조의 다짐도 나온다.

일본영화가 옛 호시절을 되찾았다고 말할 순 없다. 그래도 세계적인 수작과 흥행대작을 꾸준히 내놓으며 저력을 보이고 있다. 힘겨운 시기 저예산 에로영화를 찍으면서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다지며 버텼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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