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쌀이 어디서 열리죠?”
“쌀나무요.”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서 이런 대답이 나온 적이 있었다고 한다.
도시화가 시작됐던 1970년대 서울에서 자란 아이들 가운데 도정된 낟알만 보고 벼를 본 적이 없어 쌀이 나무에서 자라는 줄로 알았던 ‘도시 촌놈’이었다.
광화문 현판에 금이 간 것을 놓고 벌어진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현판에 금이 간 것이 여름 장마철에 수분을 흡수했던 소나무 판이 가을 건조한 날씨에 수축하면서 일어난 자연현상이라는 전통 장인들과 당국의 설명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선뜻 납득되지 않는 분위기다. 첨단기술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만든 지 3개월도 안 된 현판에 금이 가다니 도대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인 것 같다.
이런 생각은 금이 가거나 썩지 않는 가공 목재로 된 가재도구에 둘러싸여, 천연 목재를 좀체 접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 아닌가 싶다. 만약 사람들이 방습이나 방충을 위해 화학처리를 한 마루와 벽지, 가구로 가득한 아파트가 아니라 가공되지 않은 나무로 지은 옛 한옥에서 계속 살아왔더라면 현판에 금이 간 것을 보고 이렇게 의아해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명동성당은 벽돌로 지어졌다. 6ㆍ25전쟁 때 군데군데 총탄을 맞아 그 자국이 남아 있었다. 70년대에 총탄 자국을 가리기 위해 벽돌 면에 페인트칠을 했다. 유행이 돼서 벽돌로 지은 다른 성당들도 뒤따랐다.
그런데 칠이 벽돌의 숨구멍을 막아 부식이 진행됐다. 80년대에 페인트칠을 벗겨내는 작업을 했는데, 기계(그라인더)를 사용해 벽돌 표면을 갈아냈다. 그러자 벽돌의 생명과도 같은 표면의 유약이 벗겨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벽돌이 풍화돼 버려 몇 년 전 벽돌을 교체하는 보수작업을 대대적으로 해야 했다.
우리나라는 벽돌 건물이 구한말부터 지어지기 시작해 역사가 짧다. 수십 년 간 벽돌집에서 살아본 성당 관계자들마저도 흙을 구어 만든 벽돌이 목재처럼 수분과 공기를 품었다 내뿜는 숨쉬기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몇 년 전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암각화 보존대책을 연구한다는 이유로 암각화 표면의 강도를 측정하기 위해 단단한 화강암에 쓰는 측정장비(콘크리트해머)로 암각화를 무수하게 두드렸다. 그런데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는 점토가 쌓여 사기그릇처럼 변해버린 것이라 화강암보다 훨씬 약하다. 그 결과가 어떨지는 짐작할 수 있다. 그 일을 수행했던 이들도 나름대로 전문가들이었을 텐데 반구대 바위의 성질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40여 년 간 목재를 다루어온 한 인간문화재는 광화문 현판 논란에 대해 “10년을 말린 목재도 하루아침에 금이 갈 수 있다. 목재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만 말을 하고 있다”고 했다. 천연 소나무 판재는 햇빛과 바람을 쐬면 언제든지 갈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르고 소수 만이 아는 세상이 돼버린 것이다.
첨단기술시대, 인공으로 만든 도시에서 인공 제품을 쓰면서 살아가는 요즘 도시인들은 목재는 금이 가고, 돌은 깨지며, 쇠는 녹슨다는 자연현상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마저 잊어버린 ‘도시 촌놈’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현판을 둘러싼 논란이 소모적인 논쟁이 되지 않길 기대한다.
남경욱 문화부차장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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