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삐딱한데다 독설가이고 무엇이든 최고가 되고 싶어 안달을 한다. 여자친구로부터 “재수 없는 놈”이라는 말을 들어도 싸다. 말보다 생각이 빠른지 입만 열면 두서가 없다. 그래도 송곳처럼 핵심을 파고들며 생각한 바를 과감히 행동에 옮긴다. 전형적인 재승박덕 형. 과연 이런 인간(더군다나 약관의 나이다)이 도용한(것으로 여겨지는) 아이디어 하나로 사회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을까. 아마 한국사회에선 엄두도 못 낼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는 사회성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괴짜에 왕따인 하바드대 수재의 드라마틱한 성공기를 전한다. 약동하는 청춘의 혈기와 비정한 비즈니스의 법칙을 맞물린 이 영화는 올해 선보인 외화 중 완성도로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만하다. 작품성과 오락성을 두루 갖췄다.
‘소셜 네트워크’는 지난 10월 1일 미국 개봉 전부터 화제가 꼬리를 물었던 영화다. 전세계 5억명이 사용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페이스북의 개발자로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가 된 실존인물 마크 주커버그(26)를 스크린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실제와 달리 매정하고 부도덕한 인물로 묘사했다 하여 주커버그의 반발을 샀고, “영화를 보지 않겠다”던 그가 결국 페이스북 직원들을 대동하고 영화를 관람해 화제를 뿌렸다.
카메라는 주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가 2건의 소송에 대응하는 모습을 비추며 그가 초고속으로 세계적 부호가 된 ‘비법’을 되짚는다. 명문가 출신의 하바드대 학생들이 만들고자 했던 인터넷 서비스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모습과, 친구 왈도(앤드류 가필드)와 함께 페이스북을 창업하고 사세를 확장하는 과정이 숨가쁘게 전개된다. 주커버그가 음악파일 공유서비스인 냅스터의 창업자 숀 파커(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손잡고 왈도를 내치는 모습 등이 이어진다.
비즈니스 소재에 법정 드라마 요소를 가미한, 흔하디 흔한 이야기 틀이라 할 수 있지만 스크린에서 잠시도 눈을 떼기 어렵다. 주커버그가 창업을 한 뒤 권모술수도 마다하지 않고 ‘빛의 속도’로 자신의 제국을 건설해 가는 모습은 조밀한 묘사와 속도감 있는 전개로 탄력을 얻는다.
숀이 아직 세상물정에 어두운 주커버그에게 자본의 욕망을 속성으로 가르치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다. “100만달러보다 더 멋진 게 뭐게?… 10억달러.” “낚시꾼이 (그만그만한 크기의)송어 열 네 마리를 들고 사진 찍은 거 봤어?” 등 촌철살인의 가르침을 통해 주커버그는 냉혈 자본가로 거듭난다.
주커버그와 숀의 치기 어린 창업 동기도 흥미롭다. 주커버그는 여자친구 에리카(루니 마라)와 헤어진 뒤 홧김에 대학 컴퓨터를 해킹하고 에리카의 눈에 띄기 위해 사업을 키워간다. 숀은 “고등학생 때 좋아하던 여자를 뺏기 위해 냅스터를 만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상실감과 소유욕이 창업의 출발점이 되었던 셈. 내 것을 뺏기지 않으려 하고 남의 것을 가지려 하는 본능적인 욕망, 그 것이 자본주의의 실체임을 영화는 그렇게 암시한다.
부호가 되기도 전 하바드대 출신 노벨상 수상자 19명과 퓰리처상 수상자 15명, 영화배우 1명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커버그는 결핍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커버그는 에리카에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한 뒤 그녀가 수락을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의 새로고침을 쉴새 없이 클릭한다. 사회적 관계를 맺어주는 세계적 서비스를 제공한 당사자가 정작 인간관계에선 젬병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갖가지 기계적 소통은 발달했어도 소외감과 고독에 몸부림치는 현대인의 비애는 억만장자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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