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는 없지만 북한을 찬양하는 제목을 단 연주곡에 대해 1ㆍ2심이 엇갈린 판단(본보 지난해 12월2일자 10면)을 내린 가운데,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이적표현물'이라고 결론 내렸다. '국가 존립에 실제적 위험이 있을 때만 국가보안법으로 처벌 할 수 있다'는 판례를 유지하던 대법원 입장에서는 이례적인 판결이다. 이를 두고 국보법을 확대 해석해 형벌권을 과도하게 적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법원 내부에서도 일고 있다.
대법원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이동식저장장치(USB메모리)에 북한을 찬양하는 제목의 연주곡을 소지한 혐의(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소지)로 기소된 실천연대 송모(36ㆍ여) 선전위원장에게 유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이적단체 구성 등 다른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로 판단,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송씨의 USB메모리에 저장된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백두의 말발굽 소리', '내 마음 즐거워라'등의 제목이 붙은 14개의 연주곡은 제목에서는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이 연상되지만, 가사가 없어 음악을 듣는 것 자체로만은 이적성 유무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이적표현물은 민주질서를 위협하는 적극성과 공격성이 있어야 한다'는 기존의 대법원 판례대로 "해당 연주곡은 경쾌한 음으로 구성된 행진곡 내지 클래식풍 연주곡으로 일반인 입장에선 북한을 찬양하는 노래인지 구분하기 어렵고, 가사도 없어 노래에 담긴 사상성을 전달하기는 현실적으로 곤란하다"며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노랫말이 나오는지에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존립ㆍ안전을 공격하는 것으로 표현의 자유를 벗어난 이적물"이라며 1심 판단을 뒤집었다. 연주곡 리듬 역시 "경쾌한 음으로 구성된 행진곡 또는 클래식 풍 연주곡"이라면서도 "제목에서 느껴지는 인상과 비슷하고, 가사가 없어 그 사상성을 알 수 없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1심과 정반대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항소심)과 같은 이유로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만 판결의 이유를 밝혔다. '음율만으로도 체제를 위협하는 사상성이 전달 가능하다'는 항소심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법원 내부에서조차 국보법을 지나치게 확대 적용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재경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헌법재판소도 '국보법 위반에 대한 처벌은 국가에 명백한 위험성이 있을 때로 축소 제한해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며 "가사 없는 연주곡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이적물로 판단한 것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다른 판사는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베토벤이 작곡한 연주곡도 북찬양 제목만 붙이면 이적물이 된다는 말이 된다"며 "애매모호한 국보법에 대해 판례를 통해 엄격한 기준을 세워 남용의 여지를 막았던 대법원이 왜 이런 판결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법원 고위관계자는 "북한을 찬양하는 노래에서 가사를 뺀다고 해서 정체성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며 "북한을 찬양하는 이적표현물에 대해 일일이 엄격한 잣대를 대는 법원 판단의 연장선에서 나온 판결일 뿐"이라고 말했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