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환율 갈등 해소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경상수지 수치 목표 합의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미국이 6,000억달러를 푸는 양적 완화 조치를 취한 것을 두고 각국마다 ‘반미(反美)정서’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목표제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조차도 경상수지 수치 목표가 채택될 가능성에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서울 선언’이 ‘경주 선언’의 합의 수준을 뛰어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양적 완화 갈등 확산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는 ‘경주 합의’로 휴전 모드에 접어들었던 환율 전쟁에 다시 불씨를 당기는 모습이다.
중국의 왕쥔(王軍) 재정부 부부장은 6일 일본 교토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양적 완화가 이미 신흥시장에 유동성 증가 우려를 높였다”며 “우리는 (미국의) 정책 이행을 계속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주요 경제국들이 과다하게 통화를 발행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공세 강도를 높였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 인민은행장도 한 포럼에서 “만약 미국의 대내정책이 자국에만 최선의 정책이고 세계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면 각국에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상수지 수치 목표에 가장 반발하고 있는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 역시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에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6일(현지시각) 주간지 슈피겔과 인터뷰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해 환율조작을 비난한 뒤 통화당국의 도움에 힘입어 달러화 환율을 낮춘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결정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미국 금융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브라질 당국자들도 공세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엔히케 메이렐레스 브라질 중앙은행 총재는 “미국의 추가 양적 완화 조치가 브라질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브라질은 서울 정상회의에서 환율 왜곡을 피하기 위한 합의를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상수지 목표제 난망
경상수지 목표제는 지난 달 경주 재무장관회의가 서울 정상회의를 위해 남겨 둔 가장 큰 숙제. 미국과 우리나라는 경상수지 흑ㆍ적자폭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4% 이내로 제한하는 경상수지 목표제 도입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독일 일본 중국 등 흑자국들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 그래서 ‘경주 선언’은 “향후 경상수지와 관련해 예시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로 한다”는 원칙론을 담는데 그쳤다. 이렇게 공은 서울 정상회의에 넘겨졌다.
하지만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를 둘러싸고 각국의 갈등이 커지면서, 이번 정상회의에서 경상수지 수치 목표제 도입될 가능성도 매우 희박해진 양상.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APEC 재무장관회의 참석 뒤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경상수지 흑ㆍ적자 폭을 GDP의 4% 이내로 억제한다는) 수치는 바람직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며 “(G20 정상회의 선언에) 수치가 들어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일정한 틀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원론 수준의 합의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을 시인한 것이다.
의장국인 우리 정부도 그동안 겉으로는 수치 목표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서울 선언’에 4%라는 수치를 넣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온 상황.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서울 정상회의에서 4%라는 수치 목표가 담긴다면 역사적 회의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가이트너 장관의 발언 변화 등을 볼 때 이번 서울 정상회의에서 수치를 담기는 상당히 어려워졌다고 봐야 된다”고 전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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