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과학 기술계의 최대 이슈는 단연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위상과 기능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과학기술행정체제 선진화 방안'이다. 국과위를 상설기구로 하고 국가 연구개발(R&D)의 종합 기획 조정뿐 아니라 예산배분 기능을 강화한다는 방안이 발표되자, 수십 개 과학기술계 단체들이 환영 성명을 냈다. 또 한국기술단체 총연합회를 중심으로 관련법안 통과를 위한 국민서명 운동을 펴고 있다. 적극적인 의견 개진에 서툰 편인 과학기술계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과학기술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과학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으며, 우리 정부도 R&D예산을 GDP의 5%까지 늘리는 등 7대 과학기술강국을 실현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과학기술계에 거는 정부와 국민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는 국가예산 편성에서 쉽게 확인된다. 올해 2009년보다 10% 이상 많은 13.7조원 규모였던 국가 연구개발 예산은 내년도에는 14.9조원으로 늘릴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예산 대비 R&D 투자 비중으로 따지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과학기술행정체제 선진화 방안은 막대한 연구개발 예산을 효율적으로 투자하고 관리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현재 국가 연구개발 사업은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 등 18개 부처가 각 부처 성격에 맞는 연구 사업들을 기획 집행하고, 기획재정부는 각 부처가 요구한 예산을 검토해서 지원한 뒤 성과 관리와 평가를 한다. 명목상 컨트롤 타워를 맡고 있는 국과위는 예산 편성에 관해 의견을 제시하고 성과평가 결과를 보고 받는 권한이 있으며, 부처 간 중복되는 업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연구개발 투자를 실제 기획, 집행하는 것은 각 부처라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부처간 투자가 서로 중복되기 쉽고, 국가 차원의 종합 기획은 어려운 구조이다. 범 정부 차원으로 수립되는 계획 역시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기획되기보다는 부처별 계획을 한데 모아 정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획재정부는 전체 예산과 성과를 관리하지만 기획 기능이 없고, 비상설기구로 실무조직이 없는 국과위가 제한된 권한만으로 종합적인 컨트롤 타워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은 과거의 캐치업 단계를 벗어나 미래를 준비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창의적 연구개발 노력이 절실한 시점에 이르렀다. 가능성 높은 도전 분야들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캐치업 수준의 사업 기획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 수집과 기술 예측이 필요하다. 또 창의적 연구개발을 위해서는 연구개발 투자뿐 아니라, 전ㆍ후방 기술의 확보와 해당 분야 인력 양성, 성과 보급에 이르기까지 부족한 부분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계획을 수립하고 장기간 지속적으로 집행,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학기술계가 실질적 권한을 지닌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이다. 국과위 위상강화 관련법 통과를 한 목소리로 촉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무리 우수한 연주자들이 모인 오케스트라도 좋은 지휘자가 없이는 훌륭한 연주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우수한 연구인력을 비롯한 과학기술 인프라와 정부와 국민의 지원 의지 등 과학기술 강국으로 발돋음 하는데 요긴한 자원을 갖고 있다. 그래서 더욱 좋은 지휘자, 유능한 컨트롤 타워가 절실하다. 과학기술계는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소중한 과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신용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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