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 주상복합아파트 화재로 고층 건물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가운데 경기 파주시의 20층이 넘는 한 신축아파트 단지에서 소방용 고가사다리차 통행이 힘든 사실이 드러나 주민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7일 파주 교하신도시 A아파트단지 주민들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파주소방서가 15층짜리 고가사다리차를 끌고 와 단지 안에서 통행 시험을 했다. 통행 시험은 뒤쪽 동으로 연결되는 곡선경사로에 불안감을 느낀 주민들의 민원 때문이다. 곡선경사로는 폭이 약 3.9m지만 양쪽 연석을 빼면 실제 주행 가능한 폭은 3.3m에 불과하다. 이날 고가사다리차는 곡선 구간에 끼어 수 차례 전진과 후진을 반복했다. 차체가 벽에 긁히고 타이어가 연석에 걸려 찢어진 끝에 겨우 경사로를 통과한 사다리차는 단지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무려 40분이 걸렸다. 앞서 이 단지는 소방시설 완공검사필증을 교부 받았고, 통행 시험 뒤에는 시의 사용검사도 마쳤다. 주민 임모(37)씨는 “고가사다리차 진입이 힘들면 뒤쪽에 있는 단지 동들은 촌각을 다투는 화재 시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반문하며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시가 입주가 가능하도록 승인해준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도 단지 내 통행로에 대한 문제점은 인정했지만 사용검사는 미루기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지난해 시공사가 부도가 난데 이어 시행사마저 부도날 우려가 있었다”며 “한쪽에서는 빨리 입주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등 입주민 간에도 의견이 엇갈렸다”고 해명했다. 통행로에 대해서는 “시공사가 여력이 없고 구조물 시공이 끝난 상태라 재시공은 어려울 것 같다”며 “유사 사례를 막기 위해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은 300가구 미만 공동주택의 경우 폭 6m 이상인 도로를 갖춰야 하는 등 단지까지 연결되는 진입도로 기준을 정하고 있다. 단지 내 통행로에 대한 규정은 없었지만 지난해 10월에서야 ‘공동주택의 각 세대로 소방차의 접근이 가능하도록 통로를 설치, 소방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하지만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들의 구조를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파주소방서 관계자는 “시공사가 12m인 고가사다리차 길이를 간과한 것 같다”며 “주민 심정은 이해되지만 소방검사필증은 옥내소화전 등 소방시설들에 대한 필증이지 단지 내 통행로는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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