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무려 48년간 문화예술행정 한 길만을 쉬지 않고 달려온 이가 있다. 문화예술계에 관심이 있다면 벌써 “아, 그 사람” 하고 무릎을 탁 쳤을 것이다. 그는 이종덕(75) 성남문화재단 대표이사 겸 성남아트센터 사장이다.
1963년 문화공보부 공무원으로 문화예술과 인연을 맺은 그는 서울예술단 단장,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 사장 등을 역임하며 척박한 우리 공연계를 이끌어 ‘문화예술행정의 달인’ ‘공연계의 대부’ 등으로 불린다. 이달 말 임기를 마치고 6년간 몸 담은 성남을 떠나는 이 사장을 3일 오후 성남아트센터에서 만났다.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나직한 한마디 한마디 속에는 문화예술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이 사장은 “문화예술에 관심조차 없을 때부터 이쪽 일을 했는데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며 “그 시절에는 관련 법령도 변변치 않아 법을 만들어 가며 일을 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2004년 말 당시만 해도 변방이었던 경기 성남시로 올 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솔직한 답변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내가 점점 바닥으로 가는구나’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무에서 유를 만들어보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아트센터 이름에 ‘성남’을 넣겠다고 고집한 것도 그 때문이다.”
2005년 10월14일 성남아트센터 개관은 문화예술계 지각변동의 전주곡이었다. 기업인 출신 지휘자 길버트 카플란의 개관공연에 이어 ‘카라얀의 후계자’라 불리는 크리스티안 틸레만 등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 정도로 유명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성남아트센터를 첫 내한공연 무대로 선택했다. 입 소문이 나며 서울에서도 관객이 몰리자 단숨에 수도권 톱3 공연장으로 부상했다. 개관 1년3개월 만에 관객 100만명, 4년10개월 만에 300만명을 돌파한 것은 국내 공연계의 기록이다.
초고속 성장의 이면에는 ‘양질의 공연이 관객을 부른다’는 소신으로 단독공연과 초연을 밀어부친 이 사장만의 뚝심이 있었다. 그래도 “2005년부터 3년간 열었던 ‘성남 탄천페스티벌’에는 미련이 남는다. 시의원 등이 참여하는 추진자문위가 만들어지며 조직이 비대해졌고, 정치색을 띠면서 예산도 많이 들어가니까 결국 비난여론에 밀려 폐지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이 사장은 “연임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시장에게도 분명한 의사를 전했다. 성남아트센터는 이미 성남시민의 자부심을 세울 수 있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문화계 거목답게 지방자치단체 문화예술 발전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예산은 지원해주되 간섭은 없어야 한다. 대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철저하게 물어라. 여기저기서 다 끼어 들면 문화예술은 산으로 가게 된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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