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쾅'
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동 시청역 1번 출구 앞. 평온한 가을 오후 도심 한가운데서 난데없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소속 시각장애인들이 번갈아 가며 해머로 거리에 설치된 볼라드(bollardㆍ차량진입 방지용 구조물)를 내리치고 외쳤다. "보행이동권을 보장하라."
자동차의 인도 진입이나 불법 주ㆍ정차를 막기 위해 차도와 인도 경계면에 세워 둔 말뚝 모양의 구조물인 볼라드가 시각장애인에게는 '거리의 흉기'나 다름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날 모인 시각장애인 20여명은 "비(非)시각장애인 조차도 방심하는 순간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는 볼라드가 시각장애인의 안전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고 조속한 철거를 요구했다. 동작구 사당동에서 노원구 상계동까지 출퇴근한다는 노광호(시각장애 1급)씨는 "하루에도 두세 번씩 볼라드에 부딪혀 무릎이 성할 날이 없다"며 "차량 진입과 불법 주ㆍ정차를 막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자동차 진입 억제용 볼라드는 보행자의 안전하고 편리한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설치해야 한다. 또 설치 시에는 보행자의 안전을 고려해 높이 80∼100㎝ 내외, 지름은 10∼20㎝ 내외, 간격은 1.5m 내외로 하고 재질도 보행자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거리의 볼라드가 관련법 제정(2009년 4월) 이전에 설치된 것들로 지나치게 촘촘하게 설치돼 있거나 화강암 등의 재료로 만들어져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 박기열 서울시의원은 "볼라드가 어린이나 노약자들에게도 불편을 끼치고, 빙판길에 미끄러진 차량이 부딪히기도 해 차량 파손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시내 곳곳에 설치된 부적합 볼라드에 대한 정비 요구의 목소리는 높지만 개선은 미흡한 실정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시내에 설치된 3만7,000여개(2010년 9월 기준)의 볼라드 가운데 2만5,700여개가 규정에 어긋난 정비대상들이다.
김진석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상임이사는 "관리 책임이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볼라드 제거 시정 권고'에도 불구하고 예산타령만 할 뿐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불평했다. 그는 "볼라드로 인해 다른 장애까지 얻을 위험마저 있는데 이는 시각장애인 안전에 대한 인식 부족 탓"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비 작업에 90여억원의 사업비가 필요하다"며 "부적합한 시설에 대한 5개년 정비계획을 수립해 2013년까지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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