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음악이 끝났다. 동시에 조명도 꺼졌다. "브라보!" 어둠 속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퇴장했던 무용수들은 끊이지 않는 박수 소리에 다시 한 번 관객 앞에 섰다. 검은 댄스 플로어에는 30여분 간의 사투가 땀 자국으로 새겨져 있었다.
안성수픽업그룹의 '장미_봄의 제전'은 유럽에서도 통했다. 4일(현지시간) 저녁 독일 뒤셀도르프의 무용전용극장 탄츠하우스nrw에서 '코리아무브스(Kore-A-Moves)'의 개막을 장식한 이 작품은, 빠른 템포의 격정적인 몸짓으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코리아무브스는 한국 10개 무용단체가 네덜란드, 스웨덴, 에스토니아 등 유럽 8개국 11개 도시를 순회하는 프로젝트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후원하고 공연기획단체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PAP)와 독일의 탄츠하우스가 3년 동안 준비했다. 몇몇 무용단이 개별적으로 유럽에서 공연한 적은 있지만, 한국의 내로라하는 무용단들이 한꺼번에 유럽 주요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르트람 뮐러 탄츠하우스 예술감독은 비디오를 보며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다른 공연장의 참여를 유도하는 등 행사를 성사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선정된 단체는 이날 공연한 안성수픽업그룹과 NOW무용단을 비롯해 전미숙무용단, LDP 무용단, 선아댄스 등의 현대무용단 8곳과 동희범음패, 이정희무용단 등 전통무용단 2곳이다.
원시적 제의를 그린 대부분의 '봄의 제전'은 여자를 희생 제물로 바친다. 반면 남자를 제물로 설정한 안성수의 작품은 벽안의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간 듯했다. 공연이 끝난 뒤 로비에서 열린 '안무가와의 대화'에 참여한 관객들은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러시아 전통 춤의 요소가 보인다"는 등 의견을 쏟아냈다. 베르트람 뮐러 예술감독은 "'봄의 제전'은 대개가 어둡고 무거운 느낌이었는데, 안성수의 작품은 음악의 색다른 면을 보여줬다"고 평하기도 했다.
앞서 공연한 NOW무용단의 '삼일 밤, 삼일 낮'은 3일간의 한국식 장례문화를 한눈에 보여줬다. 관객들은 곳곳에 등장하는 한국어와 화투 놀이 등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죽음이라는 소재와 전통과 컨템포러리를 결합한 데 흥미를 보였다.
그러나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350석 규모의 객석은 군데군데 비어 아쉬움을 남겼다. 유럽 내에서 아직 한국 무용에 대한 인식이 그리 높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관객 로버트 크루즈릭스씨는 "중국, 일본의 무용 공연은 본 적이 있지만 한국 무용 공연은 처음"이라며 "춤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무용수들의 전체적인 움직임이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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