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발행ㆍ288쪽ㆍ1만2,000원
한국 고전소설에 빠진 국문학자가 삐딱하게 썼다. 심청이가 거룩한 효녀라고? 천만에. 살인사건 피해자일 뿐! 장화와 홍련을 죽게 만든 계모가 악독하다고? 아니, 가부장제의 희생양이지. 진범은 살인을 방조한 아버지야. 홍길동이 의적이란다, 정말 그럴까? 나중엔 높은 벼슬에 올랐다가 평화로운 율도국에 쳐들어가 자기 나라를 세웠는데, 그것도 잘한 일이냐. 서자라는 신분 콤플렉스를 권력을 쟁취하는 걸로 해소한 일그러진 영웅이지.
는 우리나라 옛 소설 13편을 달리 읽는 책이다. 권선징악, 사필귀정, 충ㆍ효ㆍ열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독법을 깨뜨린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것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이를테면 ‘장끼전’의 까투리 이야기. 먹지 말라고 한 콩을 주워 먹고 남편 장끼가 죽자 과부가 된 까투리 앞에 온갖 새들이 청혼을 한다. 까투리는 연하 부엉이와 돈 많은 오리도 거절하고 홀아비 장끼를 택하는데, 그 이유가 통쾌하다. 까투리 왈, “숫맛 알고 살림할 나이”에 “오늘 그대 풍신을 보니 수절 마음 전혀 없고 음란지심 발동하네.” 저자는 을 고소설 중 유일하게 ‘어머니의 욕망’을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한다.
저자는 고전소설을 까뒤집어 점잖은 도덕 뒤에 숨은 적나라한 욕망과 위선, 폭력과 일탈로 가득찬 속내를 파헤친다. 춘향전을 불멸의 러브스토리로 읽거나 춘향이를 열녀로 칭송하는 것은 그의 비위에 안 맞는다. 이몽룡은 순정파가 아니고, 춘향은 일편단심에 수절하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존심을 지키려고 그랬다고 본다. 순진한 부자가 교활한 친척에게 재산을 억울하게 뺏기고도 재판에 지고 마는 이야기 ‘황새 결송’에서는 사회정의를 비웃는 사법 비리를 본다. 저자는 “고전은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변주할 수 있는 콘텐츠의 보고인데, 너무 틀에 박힌 방식으로 읽는 게 아쉬워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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