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6,000억달러(664조원)의 유동성을 시장에 풀기로 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에 ‘달러 발(發)’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 발표 직후 아시아와 유럽 금융시장에서 주가와 원자재 가격은 상승하고, 미국 달러화 가치는 하락했다. 자산 버블 위험에 직면한 신흥국이 대응에 나설 경우 ‘글로벌 환율전쟁’이 재연될 수 있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4일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금융시장에서는 달러 약세와 주가 강세의 흐름이 동시에 나타났다. 일본과 중국 증시가 각각 2.1%와 1.8% 상승했고, 유로화와 위안화도 달러화에 대해 강세를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코스피지수가 1,942.50(6.53포인트 상승)를 기록해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고, 원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원ㆍ달러 환율도 2.7원 내린 1,107.50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이같은 반응은 미국에서 풀린 달러가 신흥국 자산시장으로 유입돼 이 지역의 원자재와 주식 가격을 자극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에 앞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는 3일(현지시간) 경기 부양을 위해 당초 예상보다 1,000억달러가 많은 6,000억달러를 추가 공급하는 내용의 ‘2차 양적완화 대책’을 내놓았다. 양적 완화란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더 이상 낮출 수 없을 때 국채를 직접 매입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연준 조치는 침체된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것이지만, 기축통화인 달러화 가치 하락을 유발해 신흥국 경제에 자산거품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신동석 삼성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자금흐름의 구조상 선진국 중앙은행의 통화공급은 아시아 지역으로 유입돼 자산 가격 붐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한국 증시도 1~2년 내 자산가격 버블이 진행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흥국이 대응에 나설 경우 또 다른 환율전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의 달러 공급 확대로 발생한 인플레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국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샤빈 중국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도 “연준의 추가 국채 매입 조치가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위험요인”이라면서 “달러와 같은 국제통화를 제한 없이 발행하는 한 또 다른 위기 발생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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