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가 끝난 은현리 들판에 떼까마귀가 돌아오고 있다. 나그네새인 떼까마귀는 몽골 북부나 시베리아 동부에서 돌아온다. 지난 2월에 그곳으로 날아가 10개월 만에 은현리로 다시 돌아온다. 왜 그 먼 곳까지 돌아갔다 다시 날아오는지는 알지 못하겠지만 저 몸통으로, 저 날개로 가고 오는 아득한 하늘길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바다의 고래에게 회유가 운명이라면 한 곳에서 서식하지 못하는 저 떼까마귀들에겐 나그네 같은 비행이 운명일 것이다. 사람에게도 '늘 분주하게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게 된 액운'을 가진 역마살(驛馬煞)이 있다. 이효석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처럼, 김동리 소설 '역마'의 체장수 노인처럼 사람도 짐승도 한 곳에 붙박이지 못하는 서러운 운명이 있는 것이다.
은현리로 돌아오는 떼까마귀는 영리한 짐승이다. 한 번에 우르르 날아오지 않는다. 반드시 정찰대가 먼저 날아온다. 먹을 것이 어느 정도인가를 확인한 뒤에 겨울을 날 수 있는 수의 떼까마귀떼가 속속 날아든다. 비록 날짐승이지만 자연의 섭리를 체득한 것이다.
서너 달을 떼까마귀가 은현리 빈 들판을 지킬 것이다. 텅 빈 들판이 저들의 활기차고 역동적인 비행으로 하여 외로운 풍경으로는 남지 않을 것이다. 은현리에 다시 봄까치꽃이 필 때까지, 다시 봄이 올 때까지 떼까마귀는 시인의 추운 겨울, 좋은 친구로 있을 것입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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