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한국과 중국의 물량 경쟁에 쏠려 있는 사이, 이면에서 새로운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친환경ㆍ고연비 선박 제조 경쟁이 바로 그 것. 고부가가치 선박 제조를 새로운 목표로 선언한 중국도 조만간 추격의 고삐를 당길 태세여서‘한중일 조선(造船)전쟁’이 새 전장에서 재차 발발할 전망이다.
친환경ㆍ고연비 선박, 이른바 ‘그린십’(Green Ship)이 주목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경제성 때문이다. 자동차들이 연료비 절감을 위해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등을 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선박은 자동차보다 유류비 부담이 더 크다. 컨테이너선의 경우 연료비가 운항원가의 30~40%에 달할 정도다. 국제적인 규제 강화 움직임도 무시할 수 없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선박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을 기준으로 2020년까지 20%, 2050년까지 50% 감축한다는 목표를 수립했으며 2013년부터 일정 기준을 강제 적용할 방침이다. 지금까지의 기준대로 선박을 만들었다가는 바다에 띄울 수도 없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기술과 양산 능력, 가격 경쟁력을 두루 갖춰 이 분야에서도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디젤엔진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 이상 줄인 고출력 친환경 가스엔진 ‘힘센H35G’을 지난 5월 선보인데 이어 디젤엔진과 전기모터가 함께 장착된 하이브리드 선박도 두 대나 만들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액화 천연가스를 해상에서 기화시켜 육상으로 직접 공급하는 방식으로 유해 배기가스를 92%나 감소시킨 LNG-SRV(LNG재기화선박)를 제조했다. 이 배는 덴마크에서 개최된‘그린십테크놀로지’컨퍼런스에서 지난해 최고의 친환경선박으로 선정됐다. 대우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 등 다른 업체들도 친환경ㆍ고연비 선박들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일본도 만만치 않다. 2008년 태양광패널을 탑재한 6만1,000톤급 자동차 운반선을 출항시켰을 정도로 출발은 우리나라보다 빨랐고, 핵심 기술력 역시 아직은 좀 더 앞서 있다는 평가다. 최근에도 신기술 개발이 줄을 잇고 있다.
미츠비시중공업은 지난달 선박의 마찰저항을 줄이고 내부 공간배치를 바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5%나 줄일 수 있는 1만4,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 개념설계를 완성했다. IHI마린유나이티드도 파도와 공기의 저항을 줄이고 에너지관리시스템, 태양광 패널 등을 장착한 대형 컨테이너선을 선보였다. 연간 1,200만 달러의 연료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업체의 설명이다. 미츠이조선도 지난달 말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30% 정도 낮춘 6만6,000DWT급 벌크선을 제조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 선박들은 가격이 너무 높다는 게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무서운 속도로 세계 조선 1위 자리를 차지한 중국은 아직 친환경ㆍ고연비 선박 분야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부가가치 선박 제조에 열을 올리고 있어 조만간 이 분야에서도 상당한 도전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가장 높은 상태지만 안심하긴 이르며 특히 중국의 급부상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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