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은 브라질이나 태국 등이 단기 투기성 자금을 통제하기 위해 세금을 부과하거나 일부를 중앙은행에 예치토록 한 조치를 우리나라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지난해 취한 외국인 채권 투자에 대한 이자소득세 면제 조치도 되돌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2000년대 초반 국제금융계에서 '미스터 원'으로 통했던 김 전 위원장은 국제금융 분야의 해박한 이론 지식과 외환위기 직후 재정경제부 국제금융 업무를 총괄하며 얻은 경험 때문에 국내에서 손꼽히는 금융위기 전문가이다.
그는 "금융위기의 본질은 인간의 탐욕이므로 앞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계속되는 한 또다시 나타날 것"이라며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항상 경계하고 감시하는 게 중요하며, 무엇보다 감독 당국의 역량이 높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을 맡게 된 것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현재까지 역할을 잘 해왔다고 평가하십니까.
"예상보다는 선전했고 금융규제 개혁의 진전, 국제통화기금(IMF)의 지배구조개선 합의, 미국과 중국의 환율분쟁문제 대처에서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습니다. 특히 환율분쟁과 관련,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일단 선언적이나마 합의문에 도달한 것은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경주회의에서 합의한 경상수지 관리제가 세계경제 불균형 해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요. 사실상 '환율을 조정하라'는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은 아닌지요.
"경상수지 관리제는 중국 위안화와 관련하여 1985년의 플라자 합의나 93년 독일 마르크화 절상, 80년대 말 한국의 원화 절상 등과 같은 일시적 환율조정 합의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미국이 대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주요국의 지나친 경상수지 불균형은 세계 경제의 최대 불안요인 중 하나이므로 적절히 개선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환율 조정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고, 해당국의 거시경제 구조조정이 병행돼야 합니다. 적자국은 소비를 줄이고 저축과 수출을 늘리며 재정적자를 감축하고, 흑자국은 내수를 늘리고 수출의존도를 줄이는 노력이 병행돼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할 수 있는 단기자본 유출입 규제는 어떤 게 더 있습니까.
"단기 자금유입이나 투자소득에 대한 과세, 유입자금 일부를 중앙은행에 무이자 예치하는 가변예치제도(VDR)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시에 과다한 단기 투기성 자금의 유입은 금융시장 불안을 초래하고 거시경제의 안정을 해칠 수 있습니다. 다른 신흥국도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이 정도 도입하는 데 무리가 없을 거라고 봅니다."
- 지난해 외국인 채권매입에 대한 이자소득세를 폐지한 것은 되돌릴 수 있을까요.
"금융시장 상황과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되돌릴 수 있습니다. 일시적 특례조치를 정상화하는 것은 부자연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내외국인간 차별대우는 정상적 상황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 이번 경주회의를 통해 국제 금융개혁(자본규제 등)은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뤘다는 평이 많습니다. 금융개혁이 제2의 위기를 막겠다는 애초 목적을 이루는 데 충분한가요.
"분명 성과가 있었지만 거시경제적 불안요인 해소와 구조적 문제 해결은 부진합니다. 재정건전성 회복, 글로벌 불균형 해소, 안전한 국제환율제도의 창출과 투명한 환율 운용방식 합의, 물가목표제 위주 통화정책의 한계 극복, 각국의 미진한 거시건전성 감독체계와 역량 강화 등이 실현되지 않으면 금융위기의 재발은 불가피합니다."
- G20에서 논의된 금융규제 개혁과 관련, 한국 금융시스템과 감독당국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번 금융규제 개혁은 대부분 우리도 도입하고 정착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운용입니다. 특히 정부는 물론이고 감독당국과 한국은행은 거시, 통화, 금융정책 및 시장감시, 감독 간에 확고한 공조체제를 갖춰야 합니다. 또 금융시장의 금리, 주가, 환율, 부동산 등 가격변수를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위험에 사전적으로 대응하는 역량을 크게 강화해야 합니다."
- 평범한 사람들은 G20 회의에 큰 관심이 없는데 정부가 호들갑을 떠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일부 외신이 그런 취지의 기사를 쓰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시나요.
"G20회의는 세계경제와 금융문제에 대한 해법을 논의하는 정상들의 실무적 성격의 회의입니다. 홍보도 무시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내실입니다. 의제를 주도하고 선진국, 신흥국 간 이해를 효율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호와 안전은 필수이지만 시민에게 지나친 불편을 초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오히려 국가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철저히 대비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 전 금융감독당국 최고책임자로서, 한국 경제에서 가장 큰 불안요인이 무엇이라 보십니까.
"단기적으로는 외국인 증권투자를 포함한 단기외채, 가계부채, 국가부채(3채)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구조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3가지 불균형, 즉 내수와 수출, 제조업과 서비스업,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 성장이 문제라고 봅니다. 이 문제가 해결돼야 한국경제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입니다."
● 김용덕 전 금감위원장은
▲ 1950년 전북 정읍 출생
▲ 고려대 경영학과 졸ㆍ미 워싱턴대 경영대학원 PRBP 금융과정 수료ㆍ필리핀 아테네오대학교 경영학석사(MBA)
▲ 74년 15회 행정고시 합격
▲ 99년 재경부 국제금융국장
▲ 2001년 재경부 국제업무정책관(차관보)
▲ 2003년 관세청장 ▦2005년 건설교통부 차관
▲ 2006년 대통령 경제보좌관 겸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처장
▲ 2007년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 현 고려대 경영대 초빙교수 겸 법무법인 광장 상임고문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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