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걸레 같은 XX, 똑바로 살아라.”
경기도 A여중의 B모 교사는 최근 자신에 대한 교원평가 결과를 받아 보고 충격에 빠졌다.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를 조사하면서 서술형으로 작성하도록 한 기타 의견란에 같은 여성으로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내용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업 중 마이크 소리가 너무 크다”, “필기가 너무 많아 손이 아프다”, “조그만 일에 너무 화를 내신다” 등 수업 방식과 관련해 참고할 만한 지적도 많았지만 한 학생의 글은 성적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욕설이었다.
B교사는 “학생으로부터 인격 모독에 가까운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교단에 서기가 두려워졌다. 악플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된다”고 했다.
학교 수업의 질을 높이고, 교사의 능력을 향상 시킨다는 취지로 전면 도입된 교원평가제가 시행 첫 해 웃지 못할 부작용과 해프닝을 낳고 있다. 전국 초ㆍ중ㆍ고교는 학교별로 1학기 말까지 학생 학부모의 만족도 조사와 동료 교사의 평가를 마친 뒤 지난달 교사들에게 결과를 통보했다. 교원평가 결과는 인사ㆍ보수와 연계되진 않지만 ‘미흡’ 등의 평가를 받은 교사는 연수를 받아야 한다.
익명으로 작성되는 학생들의 평가 중에는 애교 섞인 사랑 고백(?)도 적지 않았다. 서울 C중학교의 한 교사는 “정말 매력이 넘치세요. 제 마음 잘 아시죠?”라는 내용을 받아보고 “황당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젊은 교사들은 이런 글을 받은 경우가 꽤 된다”고 말했다.
학부모가 작성하는 만족도 조사에서는 교사의 정치적 성향을 문제 삼는 경우도 있었다. 전국교직원노조 소속의 일부 교사들은 학부모로부터 상당수가 “지지하는 정당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 고양시 E고의 한 교사는 “교원평가 결과는 개인적으로 성찰의 계기가 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학교에서 ‘악역’을 맡는 생활지도 교사들에게는 인신모욕적인 글이 쏟아지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 놓았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서 이런 문제가 보고돼 내년 교원평가에서는 학생들의 만족도 조사에 수업에 대한 자기성찰 항목을 넣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교사의 수업 능력에 대한 평가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육계 인사는 “학생은 수업, 학부모는 학교 운영에 대해서만 평가하도록 대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 참에 학생, 학부모, 교사가 평가에 대한 범위와 항목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승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며 “교육 당국도 밀어붙이기 식으로 교사를 압박하지 말고, 교원 평가가 실질적인 학교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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