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 서울대 식품동물생명공학부(옛 축산학과)에 임용된 김유용(46) 교수. 양돈(養豚)을 연구해 온 그는 실험ㆍ실습 환경을 살펴보려고 수원에 있는 학교 부속목장을 찾았던 때의 절망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실험에 사용할 학교 소유 돼지가 한 마리도 없었던 것. “적절한 사료 배합이나 공급 등 어떻게 해야 돼지가 잘 크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해야 강의도 하고, 연구도 하는데…. 서울대가 이 정도니까 우리나라 상황이 알만한 거죠.”
김 교수는 학교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타 학과와의 형평성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거절 당했다. 결국 사비로 새끼 돼지를 구매해 키우면서 실험에 사용했다. 그러나 튼튼한 종자를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사육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실험 과정에 태반이 죽어 나갔다.
그렇게 4년을 버틴 김 교수는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해 일을 저질렀다. 2005년 부인 명의로 돼 있던 아파트를 담보로 자금 3억5,000만원을 마련해 충북 음성에 9,900㎡(약 3,000평) 규모의 농장을 구매해 돼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1년에 15~20차례 실험을 하니까 학생들이 엄청 좋아해요. 어미 돼지 본 적도 없는 아이들이 직접 새끼도 받아보고, 기숙사도 있어서 장기간 머물 수도 있고…. 이제 더 바랄게 있나요.”
돼지 걱정을 털어버린 김 교수는 학생들과 개별 면담을 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눈에 들어왔다. 자취나 하숙생활을 하는 지방 학생들이 월 40만~50만원씩 하는 방값이 부담된다는 것. 특히 피치 못할 사정으로 중간에 방을 비워도 방값을 내야 한다는 하소연을 들을 때는 말문이 막혔단다. “예를 들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으로 1년 계약해 살다가 6개월 남기고 입대하면, 나머지 6개월 분 240만원을 제외한 760만원밖에 보증금을 못 돌려받는데요. 저도 강원도 출신이라 학생들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데,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더군요.”
그는 ‘장학금보다 학생들에게 무료로 지낼 집을 마련해 주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뜻을 같이 하는 졸업생 6명과 1억3,000만원을 모았다. 이들은 올해 8월 방 3칸에 거실, 주방, 욕실이 딸린 전셋집을 얻어 학생들에게 무료 기숙사를 마련해줬다. 덕분에 학부생 5명과 대학원생 1명이 방값 걱정 없는 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김 교수는 4일 서울대가 남다른 열정과 창의적인 강의로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한 교수에게 수여하는 ‘2010 서울대 교육상’을 탔다. “학교에서 상금으로 1,000만원을 준다네요. 이 돈을 종자돈 삼아 이번에는 여학생 기숙사를 만들어 볼 참이에요.”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