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솔 부는 바람을 따라서 우리 팔당으로 가자 / 싱그러운 바람에 향긋한 꽃 내음 두 바퀴 자전거를 타고….”
10월 24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솔밭공원에서 울려 퍼진 이 노래의 제목은 ‘팔당으로 가자’다. 북한산이 올려다 보이는 곳에서 팔당 노래를 하는 것이 다소 의외지만, 이 노래가 생태계를 있는 그대로 두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상할 것도 없다. 지금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북한산에 케이블카를 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열린‘나의 북한산을 지켜줘’라는 제목의 행사에서 팔당 노래를 부른 팀은 ‘쏭의 앞 밴드’. 일반인에게는 노래 제목만큼이나 낯선 이 밴드의 이름을, 보컬과 기타를 담당하는 송천규(32)씨가 설명한다. “원래 밴드 멤버 세 명 모두 오랫동안 각자 백 밴드로 활동해왔어요. 그래서 올해 초 백 밴드가 아니라 ‘프런트(front) 밴드’즉 ‘앞 밴드’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노래를, 우리의 연주에 맞춰 부르자는 뜻에서였어요. ‘쏭’은 제 성에서 따왔습니다. 올해 초 제 이름으로 앨범을 낸 덕분에 밴드 이름에 제 성을 쓸 수 있었지요.”
북한산 케이블카 반대 노래를 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사회적 이슈가 있는 곳을 찾아가 노래하는 현장 노래꾼이다. TV에 나온 적 없고 대규모 콘서트도 한 적이 없지만, 그는 노래를 통해 세상에 조금이나마 목소리를 낼 때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앞서 올해 8월에는 경기 팔당에서 열린 ‘팔당에코토피아’ 행사에 얼굴을 내밀었다. 4대강 사업에 따라 팔당 유기농단지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젊은이들이 모인 자리였다. 5월에는 책방골목 등이 있는 인천 배다리지역의 문화축전에 참가했고 3월부터는 재개발을 둘러싸고 논란이 됐던 홍익대 앞 칼국수식당 두리반의 금ㆍ토 음악회에 매월 한 두 차례 참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은 용산참사 현장에서 노래했다.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고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을 때, 제게는 노래가 가장 분명하고 쉬운 표현 방법입니다. 제 노래 듣고 좋다고 하거나 박수를 보내줄 때 보람을 느껴요. 가끔 야외에서 노래할 때 캔 맥주 사다 주는 분도 있었는데 그 맥주, 참 시원했습니다.”
좀 더 소박한 이유를 대자면 음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좋다. 사랑이든, 우울한 감정이든 자신의 느낌을 노래로 나타내고 거기에 사람들이 호응할 때,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진다.
사회적 메시지와 대중성 함께 있는 노래가 좋아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충남 서천군 장항읍에서 다녔던 고교 시절에도, 대학에서도 밴드를 했다. 밴드에서 그가 담당했던 부문은 기타였다.
그가 요즘 현장을 찾아 다니며 노래하는 것을 보면 혹시 학창시절에, 집회 등에서 울려 퍼진 민중음악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젊음의 열기를 담은 록음악을 좋아했다. 집회현장에서는 같이 부르지만 혼자 있을 때 혹은 노래방에서는 부르지 않는 음악보다, 많은 사람이 따라 하는 대중음악에 마음이 끌렸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사회에 대한 의미를 담되 자유로운 음악을 하고 싶다. 그의 장르가 포크록 즉 록의 비트가 있는 포크인 점을 보면, 노동현장 등에서 부르는 노래와는 장르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난다.
올해 초에는 첫 앨범 ‘눅눅한 카레라이스’를 냈다.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제목의 이 앨범에는 자취생의 궁상맞은 고달픔이 녹아있다. 자취생이 가장 흔히 먹는 음식이 카레라이스인데 그것은 이미 만들어진 카레를 구입해 뜨겁게 데운 뒤 밥에 얹기만 하면 되는 편리성 때문이다. 하지만 카레가 남으면 다음날 또 다시 밥에 얹어 먹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의 그 눅눅한 느낌을 타이틀곡으로 만들었고 앨범 제목으로 정했다. 노래의 목적성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이고 감상적인 느낌도 담아야 한다는 그의 생각이 반영돼 있다. 앨범에 들어있는 ‘달려라 휠체어’ 는 장애인 친구들을 만난 뒤 느낀 개인적 감상과 그들의 어려움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간접적으로나마 촉구하는 노래다. 그가 노래를 만든 것은 답사모임에서 알게 된 친구 부부의 집들이에 다녀와서다. 집들이에 함께 간 장애인 친구가 있었는데, 모임이 끝난 뒤 그 친구로부터, 버스 정류장 2구간 거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동휠체어를 40분이나 타고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에 전동 휠체어가 조금만 더 빠르다면 집에도 금방 가고 강변으로, 공원으로, 바닷가로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담아 노래를 만들었다. 또 다른 노래 ‘계화갯벌 이야기’는 새만금 방조제가 막히기 전 현지에서 한 갯벌 체험을 바탕으로 만든 노래다.
그의 또 다른 직업 헌책방 매니저
그는 가수로 활동하는 것 외에 헌책방에서도 일을 한다. 상업 건물이 즐비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번화가 지하의 한 헌책방, 바로 아름다운가게가 운영하는 그 헌책방에서 그는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서점에는 사람들로부터 기증받은 책 5만여권과, CD와 LP 등 음반 4,000여장이 있다. 음악을 해서인지 그는 서점 분위기에 어울리는 은은하고 조용한 곡을 골라 틀어준다. 가끔 이곳에 온 어린 아이들이 뚜렷한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울음을 터뜨리면 일본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의 연주로 명상곡 등을 들려주는데 그러면 대부분의 아이가 울음을 그친다.
그가 아름다운가게에 들어온 것은 2003년, 함께 노래하던 친구 박하재홍의 소개를 받아서다. 박하재홍 역시 아름다운가게 헌책방에서 일했다. 박하재홍은 헌책방에 힘을 보태주자며 전국의 헌책방을 순례하고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이야기는 한국일보에도 작게 실린 적이 있다.
송천규씨는 헌책방에 들어오기 전, 한때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한 적이 있다. 김광석, 동물원, 해바라기 등의 포크를 주로 불렀다. 어느 날 밤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을 노래하고 있을 때 술 취한 손님이 다가와 그를 보고 “노래 똑바로 못해?”라며 시비를 걸었다. 잘하든, 못하든 무대에서 노래하는 사람에게 노래 잘하라고 따지듯 말하는 것은, 반대로 지금 당신이 부르는 노래는 형편 없다는 뜻이 되니 노래하는 사람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지만 그래도 노래를 계속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기타로 그를 힘껏 한대 때려주고 있었다. 그 일을 겪은 뒤 노래고 음악이고 한동안 회의가 들었을 때 친구 박하재홍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헌책방 근무는 그의 생계에도 큰 보탬이 됐다.
아름다운가게는 사회적 기업이기도 하지만 사회단체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문제에도 눈을 뜨면서 자신의 노래에 보다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담았다. 물론 다른 일 하면서 음악 하기가 쉽지는 않다. 가끔 여행도 다니고 사색도 하면서 음악적 느낌을 이어가야 하는데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그렇지만 노래는 오랫동안 하고 싶다. 밥 딜런의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이나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g In The Wind)’처럼 송곳처럼 꼭꼭 찌르는 노래를 하고 싶다. 불합리하거나, 노래가 힘을 보탤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는 언제든 달려가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박광희 편집위원 khpark@hk.co.kr
■ 배고픈 '음악생산자' 자립해 봅시다
송천규씨는 헌책방 매니저라는 또 다른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약간의 여유가 있다. 하지만 노래만 하는 상당수의 친구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렵다.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만, 대형 기획사 시스템에 편입되지 않고서는 음악으로 살아가기가 무척 힘들다.
이들은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은 채 스스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자신들을 음악생산자로 부른다. 그렇지만 상업성을 배제하고, 실험적이고 진취적인 음악을 추구하다 보니 경제적인 보상이 형편 없었다. 그래서 생존을 위한 장치로 자립음악생산자조합을 만들고 있다. 토론회 등을 거쳐 현재 규약을 제정하고 있는데 내년 초부터는 본격적인 활동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조합을 통해 이들은 공연기획, 음반발매, 프로모션 등을 스스로 해결하고 음악 연습과 공연을 위한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기획을 혼자서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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