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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시론' 난해한 현대시 새 '詩學'으로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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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시론' 난해한 현대시 새 '詩學'으로 푼다

입력
2010.11.03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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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권혁웅 지음/문학동네 발행ㆍ687쪽ㆍ2만5,000원

문학평론가로서 권혁웅(43)씨는 2005년 계간 문예중앙에 일군의 젊은 시인들을 '미래파'로 명명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시적 경향을 분석한 비평문을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이 글은 잠잠했던 2000년대 한국 문단에 일대 논쟁을 일으키는 뇌관이 됐고, 미래파의 시에 대한 가치판단을 둘러싼 첨예한 논쟁에서 그는 그들을 옹호하는 진영의 대표적 비평가였다.

권씨가 5년에 걸쳐 썼다는 700쪽에 가까운 이 방대한 책은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등장해 전통적 서정시와는 뚜렷이 다른 문법과 구조를 선보이고 있는 시인들과 그들의 작품의 특질을 체계적으로 해명하려는 의지의 산물로 여겨진다. 논의의 사례로 인용된 시들 중 상당수가 미래파를 비롯한 젊은 시인들의 작품이라는 점이 저자의 이런 의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독자 입장에서 이 책은 예전보다 난해해졌다는 평을 듣는 최근의 한국 시에 대한 이해와 감상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안내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지적해둘 것은 이 책이 현장비평서 수준을 넘어 권씨가 국문학자로서 학술적 체계를 갖춰 쓴 시학 이론서라는 점이다. 한양여대 교수로 재직 중인 권씨는 "기존의 시학 이론서들이 현재의 시들을 설명하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아 새로운 시론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며 "이 책을 통해 독자적인 시학 이론의 체계를 구축하려고 고심했다"고 서문을 적었다.

3부 19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은 '화자' 대신 '주체'라는 관점에서 시를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통적 관점에서 보면 시는 (시적) 화자의 독백 형식이고, 화자는 시인이 작품 안에 가면처럼 내세운 서술자다. 즉 시적 발화(發話)는 가면을 쓴 시인과 다름없는 화자의 목소리여서 시를 읽으면 시인의 의식과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그간의 통념이었다. 하지만 권씨는 시인 김행숙, 이근화, 이민하씨 등을 예로 들며 시적 화자는 여럿이고, 심지어 화자의 말을 듣는 청자까지도 형식상으로는 화자로 등장하는, '화자=시인'이라는 전통적 관점으로는 옳게 이해할 수 없는 시가 즐비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주체다. 주체는 시의 형식이 아니라 의미를 따졌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다. 주체와 화자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권씨는 김훈씨의 소설 <칼의 노래> 와 산문 중 유사한 내용을 발췌해 비교한다. "소설의 화자는 이순신이고 산문의 화자는 김훈 자신이지만, 두 글의 화자를 분리해서 말하기가 어렵다. 동일한 발화의 맥락을 갖고, 그래서 동일한 문체로 적혔기 때문이다… 두 글은 각각 다른 발화 주체를 가졌지만 내부적으로는 동일한 주체를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28~30쪽) 이어 그는 "우리는 시인(혹은 화자)이 말하고자 하는 것 너머에 있는 것까지 읽어내야 하며 이런 발화의 중심점, 곧 발화가 생겨나는 자리가 주체"라고 규정한다.

주체라는 새로운 시 분석틀을 실마리 삼아 권씨는 "(시적) 대상이 주체를 낳는 것이지 주체가 대상을 낳는 것이 아니다" "주체와 대상의 일치를 추구하는 전통적 서정시뿐 아니라, 이상의 시처럼 주체와 세계가 어긋나면서 비극적 정념을 드러내는 시들도 서정시에 포함해야 한다"는 등 시의 해석 가능성을 확장하는 독창적 시학을 전개한다. 1997년 등단한 시인이기도 한 그의 네 번째 시집 <소문들> (문학과지성사 발행)도 이번에 함께 출간됐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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