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을 나섰을 땐 이미 칠흙같은 밤이었다. 푸니쿨라(케이블카)는 끊긴 지 오래, 30분 넘게 기다려 버스에 올랐다. 달팽이 껍질마냥 빙글빙글 휘감아 오르는 길을, 버스는 무엇에 쫓기기라도 하듯 거칠게 내달렸다. “쳇, 슬로시티라더니….” 가벼운 멀미에 짜증을 내다 이내 헛웃음이 났다. 느린 삶을 찾아나선 길인데, 발도 들여놓기 전 사소한 일에 불평부터 쏟는 조급증이라니.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주, 해발 195m의 바위산에 올라앉은 중세도시 오르비에토(Orvieto). 구름이 낮게 깔리면 마치 하늘에 둥실 떠있는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힌다. ‘옛 도시’란 뜻의 라틴어 ‘Urbs Vetus’에서 유래한 이름처럼 고대 에트루리아 이래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볼세나의 기적’으로 불리는 13세기 성체포(聖體布)가 보관된 두오모(대성당), 16세기 교황이 지시해 팠다는 깊이 62m의 성 파트리치오 우물 등 수많은 유적을 품고 있다.
도시의 중심 두오모 광장. 1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버스는 이른 아침부터 세계 각국 언어를쓰는 관광객들을 쏟아낸다. 빠른 걸음으로 30분이면 도시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는, 인구 5,000명(위성도시들을 합쳐도 2만명)의 소도시에 한해 200만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것은 천혜의 절경과 유적 때문만은 아니다. 속도에 짓눌린 현대인의 삶에 ‘느리게 살기’란 화두를 던진 ‘슬로시티(slow city) 운동’의 본고장이 바로 오르비에토다.
슬로시티(이탈리아어로는 치타슬로ㆍCittaslow) 운동의 뿌리는 슬로푸드다. 1986년 맥도날드가 로마 한복판에까지 파고들자 이탈리아에서는 북부도시 브라를 중심으로 패스트푸드에 맞서 우리 땅에서 난 재료로 공들여 만든 전통음식을 지키자는 운동이 시작됐다. 슬로시티는 이런 슬로푸드의 철학을 삶과 문화 전반으로 넓힌 것으로, 1999년 그레베 시장 사투르니니의 제안에 오르비에토와 브라, 포지타노 시장이 호응해 첫 발을 뗐다. 1989년 패스트푸드점 개설금지법을 공포하는 등 슬로푸드에 적극 동참해온 오르비에토는 국제슬로시티연맹 본부를 유치해 이 운동의 중심에 섰다.
‘좋은 음식과 건강한 환경, 지속가능한 개발, 공동체의 전통 위에서 삶의 질을 추구하는 도시’. 목표는 분명했지만, 이를 실제 어떻게 구체화시켜 도시의 삶에 접목할 것인지는 난제였다.
오르비에토의 첫 사업은 차량 통행 제한. 두오모 주변 도심은 차량 통행을 전면 금지(심야와 새벽에 영업용만 허용)하고, 외부 차량의 도시 진입을 막는 대신 외곽에 대형주차장 3곳을 만들었다. 바위산 서남쪽 중턱의 주차장은 전망도 좋고 중세시대 수로를 따라 놓인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재미까지 선사해, 푸니쿨라와 함께 도시의 명물이 됐다. 시청 도시계획 매니저 로코 올리바데제(45)씨는 “본래 사람들이 만나 대화를 나누던 광장과 거리를 시민들에게 되돌려 준 것”이라고 말했다.
오르비에토의 지반은 무른 화산암인데다, 에트루리아 이래 식품 보관 등을 위해 집집마다 판 지하굴이 1,200여개에 달한다. 차량 제한은 지반 약화 위험도 줄였다. 주차장 설비 등 재원은 허물어져가는 동쪽 성벽 보수를 위해 정부가 지원한 돈을 아껴 충당했다. 반발은 없었을까. 올리바데제씨는 “상인들이 차 없이 외지인들이 오겠냐며 반발했지만, 오히려 관광객들이 천천히 걸으며 상점에 더 많이 들르게 되자 불평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눈앞의 편리만 좇을 게 아니라 당장 불편해도 지속가능한 미래를 추구하는 것이 ‘느린 삶’의 진정한 가치임을 일러주는 대목이다.
목요일 아침, 델 포폴로 광장에 장이 섰다. 먹을거리며 옷가지, 주방도구 등 웬만한 생필품은 다 있다. 주 2회 장날에 맞춰 필요한 것만 사니 차 타고 멀리 나가 트렁크 가득 쇼핑할 일도, 냉장고에 채워둔 식재료가 상해 버리는 일도 좀처럼 없다. 트럭을 몰고 온 외지 상인들 틈엔 텃밭에서 기른 야채며 과일을 파는 주민들도 있다. 낡은 전통저울을 손에 든 마리아(73) 할머니는 “이렇게 40년을 야채 팔아 아이들 키우고 먹고 살았다”며 웃었다.
한낮에 관광객들에게 거리를 내줬던 주민들은 땅거미가 지자 두오모에서 시청 앞 광장에 이르는 중심가로 몰려나왔다. 오랜 전통인 공동산책, ‘파세쟈타’이다. 유모차를 미는 부부, 손주를 앞세운 노부부, 퇴근길 노천카페에서 술 한 잔에 수다를 섞는 젊은이들…. 인삿말과 손짓을 분주히 주고받다 저녁식사 때인 오후 8시 무렵 일제히 집으로 향하는 모습이나, 네온사인이라곤 약국에 달린 녹십자뿐인 번화가, 별빛을 즐길 수 있게 조도를 낮춘 가로등, 모든 게 신기하고 부러운 광경이다.
치타슬로에선 모두들 행복할까. 노 역사학자 프랑코 브란칼레오니씨는 이방인의 우문에 “사람들 말을 들어보라”며 수공예 공방 겸 상점들로 이끌었다. 수공업은 예로부터 오르비에토 주민 대다수가 종사하며 도시경제를 이끌어온 주 산업인데다, 상점은 말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골목을 돌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20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는 프랑스 출신의 목공예공방 주인 파트리스씨는 “이게 관광도시지, 무슨 치타슬로냐. 관광객들 몰리면서 진짜 삶을 잃었다”고 말했다. 중심가에 슬금슬금 들어선 베네통 등 옷가게를 가리키며 “맥도날드만 아니면 되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목공 명가 미켈란젤리를 5대째 잇고 있다는 세 자매의 막내 라파엘라씨는 “젊은이들이 갈수록 수공업을 외면해 어르신들 돌아가시면 국보급 기술들이 사라질까봐 걱정”이라며 낯빛을 흐렸다.
10년 전쯤 전통문양을 아예 접고 미국인들 좋아하는 크고 화려한 장식용품을 주로 만든다는 한 사기공방 여주인은 “손님의 99%가 미국인이니 어쩌겠나. 그래도 돈 버니 좋다”고 했다. 전통과 자부심을 지키는 공예인들이 여전히 많지만, 맥도날드로 상징되는 미국화에 반대하고 전통 보전을 외치던 슬로시티의 본고장에서 미국인들의 두툼한 지갑에 전통을 내다버린 현장을 목도한 기분은 씁쓸했다. 점심 무렵 2~3시간은 칼같이 가게 문을 닫던 전통도 조금씩 무너지는 요즘, “나는 물건 떼다 파는 사람이 아니라 아티스트다. 나를 위해 두 시간은 꼭 쉬고 내 작품 스타일을 지키겠다”는 도기공예가 베르니니씨의 고집이 그나마 은근히 위안이 됐다.
세대 차도 있다. “관광객만 들끓는다”는 기성세대의 불평에, 젊은이들은 “도시에 활기가 넘쳐 좋다”고 응수한다. 오르비에토 시가 2단계 전략으로 추진 중인 ‘QSV(가치화) 전략’도 그런 갈등과 고민 속에서 나왔다. 집값은 뛰고 보수하기도 어려울 만큼 낡은 학교와 병원 시설까지 산 아래로 옮겨가자 도시를 떠난 젊은 부부들이나 일자리를 찾아 대처로 나간 젊은이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수공예 청년 장인들을 키우는 것이 주요 목표다. 이를 위해 외국인 합법체류자를 포함해 40세 미만 청년들에게 저리의 주택융자를 해주고, 수공예 및 외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작정이다. 올리바데제씨는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60세 이상인 현 상황을 방치하면 오르비에토는 언젠가 유령도시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둠에 잠기는 도시를 뒤로 하고 기차역으로 향하는 푸니쿨라에 올랐다. 10년쯤 뒤에도 여전히 이 슬로시티는 아름다운 도시로 남아있을까. “오르비에토여, 건재하라! 느리게, 그리고 젊게!”
오르비에토(이탈리아)= 글ㆍ사진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 산골처녀 요리사의 슬로푸드 예찬
오르비에토의 맛을 담은 슬로푸드를 먹고 싶다고 하자, 올리베티 국제슬로시티연맹 사무총장은 망설임 없이 식당 한 곳을 추천했다. 레스토랑 알 살타피키오(al Saltapicchio)는 주문 받는 방식부터 달랐다. “메뉴엔 없지만 요즘 버섯 철인데 버섯소스 파스타나 버섯튀김이 어떨까요?” 장장 3시간 동안 ‘셰프 특별요리’ ‘제철 음식’ 등의 설명을 단 요리를 풀코스로 맛봤다. 재료 고유의 맛이 살아있고 만든 이의 정성까지 혀끝에 느껴져 엄지손가락이 절로 올라갔다.
순박하면서도 강단있어 뵈는 갓 서른의 아가씨 셰프 발렌티나에게 인터뷰를 청하자, “내일 아침 시골집 텃밭 가는 길에 동행하자”고 한다. 오르비에토에서 20km가량 떨어진 시골마을 피쿨레. 그는 시골집에 도착하자마자 팔을 걷어붙이고 텃밭으로 들어가더니 채소를 뚝뚝 따 담는다. 메모 한 장 없는데도 손길이 거침없다. “필요한 재료는 미리 생각해두지만, 싱싱한 제철 채소 쓰는 걸 원칙으로 해요. 당연히 레시피는 그때그때 바뀌죠. 만날 똑같은 음식 만들면 싫증나잖아요.”
텃밭만이 아니다. 소 돼지 닭 토끼도 직접 키우고, 올리브기름도 손수 재배해 짠 최상급만 쓴다. “내륙엔 없는 해물만 빼면 모든 재료를 이 지역에서 아는 분들 통해 조달하죠. 훈제고기, 치즈용 양젖도 꼭 방목해 키운 것들만 써요.” 재료만큼은 스스로 정한 원칙을 어기는 일이 없단다.
놀랍게도 그는 요리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농약 안 쓴 좋은 재료로 정성껏 음식 만드는 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솜씨란다. 하지만 전통요리법을 꼭 지켜야 하는 몇 가지 말고는 재료와 향료를 넣었다 뺐다 하면서 끊임없이 실험을 한다. “움브리아의 푸른 숲을 떠올리게 하는 맛과 향, 그리고 모든 것들의 고향인 땅의 기운이 느껴지는 음식, 그래서 누구나 먹어보면 ‘아, 이 맛이야’라고 할 수 있는 이 도시의 맛을 계속 표현해내고 싶어요.”
슬로푸드, 슬로시티 ‘운동’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공감대가 별로 없는 듯하다”고 했다. “그 운동이 잘 됐다면 식당 연 지 2년밖에 안된 제가 마치 오르비에토 슬로푸드의 대표선수나 된 것마냥 여기저기 국내외 TV, 신문에 소개될 수 있었겠어요? 생각있는 젊은이들이 20년쯤 꾸준히 노력한 뒤에나 슬로푸드든, 슬로시티든 성과가 나오겠죠.” 그 뒷말, 실현될 수 있기를.
오르비에토= 이희정기자
■ 국제슬로시티연맹 사무총장 올리베티 인터뷰
오르비에토에 본부를 둔 국제슬로시티연맹의 피에르 조르조 올리베티(사진) 사무총장을 찾았을 때 맨 먼저 눈에 띈 건 책상 위에 놓인 한글 명패였다. 한국 손님 접대용으로 일부러 갖다놓은 것 아닌가 묻자, 그는 “한국슬로시티본부에서 준 건데 늘 이 자리에 두고 있다”며 웃었다. “슬로시티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현재 슬로시티 가입 지역은 세계 20개국 135곳으로, 이탈리아(68곳)를 비롯한 유럽이 121곳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가입한 나라로는 한국이 유일하다. 전남 신안군 증도, 완도군 청산도, 장흥군 유치ㆍ장흥면, 담양군 창평면과 경남 하동군 악양면, 충남 예산군 대흥ㆍ응봉면 등 6곳이 슬로시티로 지정돼있다. 올리베티 총장은 “후보지가 하나 더 있어 곧 실사하러 한국에 갈 것”이라며 “석 달에 한 번 꼴로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고 말했다.
슬로시티가 되려면 우선 인구 5만명 이하에, ▦유기농 진작 ▦도시 환경과 역사 보전 ▦대체 에너지 개발 ▦네온사인과 조명 제한 등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한국은 슬로시티를 농어촌 개발의 대안으로 보고 정부까지 나서 적극 지원하고 있어 지자체들의 관심이 매우 높다.
그러나 올리베티 총장은 “슬로시티는 무엇을 좀 바꿔서 ‘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요소를 갖춘 지역이 인증을 통해 좀더 발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무조건 많은 도시가 들어오길 바라지 않는다”면서 “슬로시티가 되면 관광객이 늘고 주변 지역보다 집값도 오르는 등 부수효과가 있긴 하지만, 중요한 건 실제 시민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높아지느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느리게 살자니까 혹자는 과거로 돌아가자는 복고운동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느림은, 과거는 다 내버리고 새 것만 좇는 데 반대한다는 뜻이에요. 첨단 기술을 받아들이되 삶의 질을 중심에 놓고, 노인들의 삶의 지혜 같은 좋은 과거와 전통을 지키자는 것이지요.”
오르비에토= 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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