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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동아시아 영토분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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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동아시아 영토분쟁 속에서

입력
2010.11.0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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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태평양 화산대는 태평양 가장자리를 따라 말굽 모양으로 형성된 거대한 띠다. 이 띠를 따라 지진과 화산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불의 고리'(ring of fire)가 깨어나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도 있다. 요즘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동아시아의 해양 영토분쟁 지역을 연결하면 환태평양 화산대의 서쪽 띠와 거의 정확하게 겹친다. 이 지대의 지진과 화산활동이 태평양판과 유라시아대륙판이 맞부딪쳐 일어나는 것이라면 이 지역의 해양 영토분쟁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한 결과다.

해양세력 대 대륙세력의 충돌

구체적으로는 중국과 일본(센카쿠열도), 일본과 러시아(남쿠릴열도), 중국과 베트남(시사군도, 난사군도) 등 역내 인접 국가들 간의 다툼이다. 그러나 이 모든 지역의 분쟁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며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 결국 동아시아에 격랑을 몰아오고 있는 동시다발적 해양분쟁은 팽창하는 '중국판'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판'의 충돌로도 볼 수 있다. 동아시아 해양분쟁의 기저에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역내 패권질서 재편의 갈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영토분쟁의 격랑에서 가장 심하게 흔들리는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협공을 당하고 있는 일본이다. 독도문제까지 포함하면 거의 사면초가로 몰리는 형국인데, 일본 열도가 거의 공황상태에 빠진 것 같다. 일본제국의 팽창주의가 뿌린 씨앗을 순리적으로 매듭짓지 못한 업보다.

그러나 우리도 일본의 곤란한 처지를 내심 고소해하고 있을 만큼 한가한 상황은 절대 아니다. 동아시아 영토분쟁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느냐는 한반도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열강이 각축하던 구한말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반도 평화와 안정, 통일과 번영이 걸린 중대 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미ㆍ일의 해양세력과 중ㆍ러의 대륙세력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도록 몰리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다. 어느 한 세력에게라도 척을 지고는 평화와 번영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반도가 거대한 양대 세력이 충돌하는 최전선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격랑의 바다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돛단배 신세가 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 원치 않은 상황으로 몰리지 않도록 치밀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하지만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의 물고 물리는 국제정치게임에 우리나라가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다.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 않는다 해도 동아시아 역내 주요국가들간 갈등의 장기화는 북한의 변화와 핵 문제 해결 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자회담 주요 참가국들간 반목은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고 있는 6자회담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한ㆍ미ㆍ일 대 북ㆍ중ㆍ러의 대결구도는 북한의 핵 보유국 기정사실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3대 권력세습 공식화를 전후해 진행된 북중간의 정치ㆍ군사적 차원만이 아니라 경협 차원의 급속한 밀착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북한이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고 중국에 더욱 예속되면 통일은 점점 더 요원해진다. 바로 분단의 고착화다. 동아시아의 영토분쟁 격랑 속에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분단 고착화 상황만은 막아야

최소한 남북대결과 긴장의 장기화가 해양영토 분쟁을 매개로 한 동아시아의 질서 재편 소용돌이에 휘말려 한반도의 안정을 깨뜨리거나 분단 고착화로 이어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 밀려오는 파도에 덜 흔들리려면 남북이 손잡고 안정된 틀을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먼저 변할 것을 요구하며 기다리는 전략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남북관계 개선에 북한의 진정성이 필요하다면 북한이 진정성을 보일 수 있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관계 개선을 통해 천안함 사건 사과와 핵 폐기 의지 진정성을 이끌어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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