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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 소년이 날아올랐다… 그 뒤엔 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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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 소년이 날아올랐다… 그 뒤엔 그가 있었다

입력
2010.11.02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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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 발레 소년이 날아올랐다. 몸을 무대 쪽으로 바짝 당긴 관객들은 숨 죽인 채 그를 바라봤다. 힘찬 점프와 깔끔한 회전. 적막 뒤엔 어김없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지난달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유니버설발레단의 '라 바야데르'에서 객원무용수로서 솔로르 역을 맡은 김기민(18ㆍ한국예술종합학교 2년)군은 관객들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2008 로마국제발레콩쿠르 금상, 2009 모스크바국제발레콩쿠르의 금상 없는 은상, 2010 USA콩쿠르 은상, 2010 바르나콩쿠르 금상…. 세계 유수 콩쿠르를 섭렵한 그가 프로 발레단원 틈에서 진면목을 드러낸 것이다.

유학 한 번 하지 않은 김군에게는 은인과도 같은 스승이 있다. '발레리노의 교과서'라 불리는 이원국(43)씨다. 국내 1세대 발레리노인 이씨는 마땅한 선생님을 찾지 못해 책과 비디오를 보며 독학한 것으로 유명하다. 장운규, 엄재용 등 국내 내로라하는 남자 주역들도 그에게 배웠다. 그 중에서도 김군에 대한 이씨의 애정은 각별하다. 5~7일 공연되는 이원국발레단의 '지젤'에서 알브레히트 역을 맡은 두 사람을 1일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났다.

▦이원국(이하 이)= 그날(지난달 30일) 공연만 없었더라도 내가 가서 더 크게 브라보를 외쳤을 텐데! 이제 시작이구나 싶지?

▦김기민(이하 김)= 공연할 때는 긴장해서 아무 것도 안 들렸어요. 어릴 때부터 꿈 꿔온 작품이라 그런지 여운이 남아요.

▦이= 첫눈에 이 친구의 재능을 알아봤죠. 2004년 가을이었는데, 기민이랑 형 기완이가 국립발레단 앞으로 찾아왔어요. 어머님이 그러대요. 한 명은 발레를 시키고 한 명은 그만 둘 거다, 가능성 좀 봐달라. 기민이 기량이 대단하다고 했더니 글쎄 그만둘 애가 기민이라더군요.

▦김= 형은 저보다 훤칠하고 잘생겼어요. 다른 선생님들은 제가 무릎도 나오고 해서 발레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죠. 선생님이 없었다면 그만뒀을 거예요. 저희 형제가 발레를 하게 된 것도 어머니가 선생님이 나온 잡지를 인상 깊게 봤기 때문이래요.

▦이= 그래? 처음 듣는 소리네. 기민이는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알았죠. 하루는 가르쳐주지도 않은 '돈키호테' 솔로를 시켰는데 그걸 무대에서 하더라고요. 절대 '노(No)'를 하지 않는 자세도 훌륭해요. 공연 전 날 갑자기 불러도 문제없죠. 그렇게 단련을 시켜놨고요. 연습을 실전처럼 하니까 콩쿠르에서도 잘한 거예요.

▦김= 선생님이 '어디서도 기죽지 말라, 어깨를 펴라'고 하셨잖아요. 제 롤모델은 항상 선생님이라 지금도 선생님이 나오는 비디오를 봐요. 제 춤이 선생님과 닮은 건 자꾸 따라 해서죠. 선생님은 파트너를 빛내주는 최고의 무용수예요.

▦이= 청출어람. 저보다 낫죠. 저는 26살에 주역을 했는데, 기민이는 16살에 주역을 했으니 10년이나 앞당겼어요. 그래도 제가 롤모델이라는 말을 들으면 용기를 많이 얻어요.

▦김= 선생님은 저희 가족에게는 또 다른 식구예요. 요즘도 어머니는 이원국발레단 연습실에서 피아노 반주를 해주시고, 아버지는 발레단 공연을 거의 다 보시죠. 선생님과 저, 형이 함께한 '돈키호테'는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이= 기민이가 영국 로열발레단 같은 세계 무대로 나가기를 바래요. 단, 이것만은 말해두고 싶네요. 지금은 떠오르는 해이지만 언젠가 해는 지잖아요. 저처럼요. 그걸 기억하고 후회없이 춤추라고요.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원유헌기자 youhon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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