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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의 자녀 교육보감] <28> 원인과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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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의 자녀 교육보감] <28> 원인과 결과

입력
2010.11.0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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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자녀의 성적표를 직접 보게 된 학부모가 놀란 마음에 상담을 요청했다. 그동안 그럭저럭 공부를 하는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충격'에 빠진 것이다. 이 경우 상담은 주로 학부모의 흥분상태를 가라앉히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대개 학부모는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는 생각에 연신 자녀의 성적 결과를 부정하려 든다. '정말 왜 그랬을까'하는 원인에 대한 생각은 좀처럼 하지 못한다. 만약 자신을 극도로 흥분하게 만든 어떤 결과에 대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계속해서 바꾸지 않는다면 상담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 경우 자녀를 공격하는 부모와 아이를 옹호하는 상담자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지속되다가, 결국 부모가 먼저 자리를 뜨는 것으로 상담은 종료되고 만다.

이와 달리 상담을 통해 충격적인 결과가 결코 자녀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부모가 이해하기 시작하면 문제 해결은 급물살을 탄다. 원인을 하나하나 파악하고 이해해나가는 과정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원인에 대해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예방할 수 있는 불행한 일들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심지어 '복수'라는 섬뜩한 단어가 심심찮게 나오기도 한다.

상담 요청을 한 아버지는 고교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로, 모의고사 성적표를 들고 왔다. 그는 바쁘게 직장생활을 하느라 학원과 과외비를 투자하는 것으로 부모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중하위권에 머무는 성적표를 처음 확인하고 배심감에 사로잡혀 흥분한 상태. 알고 보니 자녀가 심야시간에 공부를 하는 척하면서 게임에 빠져 있었다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와 대화해 보니 평소 가족 간의 대화가 단절돼 있었다. 또 부모의 과도한 기대 때문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이 도리어 원인 제공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배신감이 아닌 미안함을 느꼈다. 자녀도 아빠의 변화에 힘입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과만을 놓고 판단하면 사태를 악화시킬 가능성만 높이게 된다. 아이가 미워지게 되고, 미운 감정에 사로잡히면 제대로 원인을 살필 수 있는 시야가 가려진다. 자녀 입장에서도 잘못된 결과를 낳은 당사자로 변명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면 혼란한 감정 상태에 빠진다.

자녀는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을 하면 부모의 지적이나 책임 추궁에 흔쾌히 동의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기에, 다른 원인 제공자가 배후에 숨어 있다는 생각에 반발심을 갖게 된다.

고급 전문 어학원에 오랫동안 보냈지만 기대한 영어 실력 향상은커녕 오히려 영어 공부를 멀리하는 학생이 있었다. 알아보니 학원 강사에 원인이 있었다. 학원 수업시간 중에 강사가 아이에게 모욕감을 주었고,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복수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 강사를 비난하기 위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집중력이 떨어져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는 수험생들과 얘기해보면 개인적인 의지 부족이 아니라 어린 시절 무리하게 공부했던 끔찍한 공부 추억에 시달리고 있었던 경우도 흔하게 발견된다. 이처럼 원인만 파악하면 개선 작업이 쉬운 경우가 적지 않다.

결과만을 보고 책임을 추궁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이 의도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실망하고 책임을 추궁하는 부모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부모 역할에서 경제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점점 자녀에게 투자하는 액수가 많아진 결과가 아닌가 한다. "내가 이렇게 투자를 많이 했는데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라는 식이다. 단언컨대 부모를 실망시키거나 화가 나게 만드는 결과를 처음부터 자녀가 의도하는 경우는 결코 없다. 아이들은 누구나 공부를 잘하고 싶어 한다. 보통은 결과로 드러난 사실과는 정반대로 부모를 만족시키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 세상 일처럼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결심한 대로 실천하지 못해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것뿐이다.

여전히 학벌지상주의인 우리 사회에서, 정해진 엘리트 코스를 선두에서 질주하는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학생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잔혹한 현실이 대한민국 청소년들을 위기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럴수록 단 한 사람, 부모만이라도 결과에만 매몰되지 않고 원인을 살피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래야 아이들이 조그마한 희망이나마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기성세대, 특히 자녀에게 집착하기 쉬운 부모 입장에서 결과만을 놓고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아무리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라 하더라도 최소한 한번쯤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 원인에 대해 생각하는 자세를 취해보자. 새롭게 변화하는 자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과에 반응하면 실패하지만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성공한다.

비상교육 공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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