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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하이에나 검찰'의 굴레

입력
2010.11.0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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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권력형 비리 수사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는 듯하다. 정권 초기와 말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정권 초기에 검찰이 분주한 것은 두 말할 것 없이 지난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서다. 권력이 생생히 살아 있을 때는 손을 대지 못하다 정권이 바뀐 뒤 기다렸다는 듯이 메스를 들이대는 것이다. 김영삼 정권 초기에는 노태우 정권의 실세였던 박철언을 슬롯머신 사건으로 구속했고, 이명박 정권 초기에는 '박연차 게이트'가 터져 나왔다. 노무현 정권 초기에도 검찰이 바쁘긴 했으나 지난 정권이 아니라 현 정권을 겨냥했다는 게 달랐다. 장수천 사건으로 안희정 등 측근들이 여럿 구속됐는데 노 정권과 검찰의 갈등관계의 단초가 됐다.

여전히 권력 눈치 보는 검찰

정권 후반기 검찰이 바쁜 데는 두 가지 전제가 따른다. 내리막길에 들어선 권력의 힘이 급격히 떨어지고 대통령 주변의 비리가 곪을대로 곪아 도저히 손쓸 수 없게 될 지경이어야 한다. 김영삼 정권 말기의 '김현철 게이트'와 김대중 정권 후반에 터진 '홍삼(김홍일, 김홍업, 김홍걸) 게이트' 가 그런 경우다.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이명박 정권의 검찰은 어떤 궤적을 그릴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예기치 않은 죽음으로 미처 매듭짓지 못한 지난 정권의 비리를 도려내는 한편으로 현 정권의 누적된 비리도 마냥 외면하고만 있을 수 없는 형국이라는 점에서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검찰의 행보를 보면 여전히 눈길은 지난 정권에 쏠려 있는 듯 보인다. 단순한 추측이 아닌 것이 현 정권 들어 검찰이 보여온 행태를 짚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천신일 수사만 해도 그렇다.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한 게 벌써 여러 달 전이지만 여직껏 가타부타 한마디 언급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천씨가 외국으로 달아났고 두 달이나 지나서야 압수수색에 나섰다. 기업수사를 둘러싼 형평성 논란이 일자 마지못해 시늉을 한 거라는 비난이 쏟아져도 할 말이 없게 돼 있다.

정권의 재신임을 받기 위한 그림로비와 박연차 세무조사 관련 의혹 등 현 정부 권력형 비리 의혹의 열쇠를 쥔 한상률 전 국체청장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총리실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 청와대가 직접 개입됐다는 새로운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지만 재수사만은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뿐만 아니다. 조현오 경찰청장의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은 고발장이 접수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조 청장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고, 기업의 법인카드로 술값을 계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조홍희 서울지방국세청장에 대한 고발 건도 감감무소식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재벌수사를 봐도 살아 있는 권력에 약한 검찰의 맨 얼굴이 드러난다. C&그룹이 과거 정권에서 몸집을 부풀리면서 생겼을 비리를 당시에는 왜 눈감고 있었는지 검찰은 대답해야 한다. 지난해 발생한 태광의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 로비사건 수사를 제대로 했다면 왜 1년 만에 재수사에 나섰는지도 해명해야 한다.

살아 있는 권력을 단죄해야

권력형 비리는 살아 있는 권력이 제공하는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 검찰의 진정한 존재 가치는 부패의 씨앗이 자라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지 않도록 일찌감치 찾아내 환부를 도려내는 데 있다. 정권이 바뀐 뒤 아무리 죽은 권력을 난도질해봐야 '하이에나 검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뿐이다. 1976년 록히드 사건을 수사한 도쿄지검 특수부장이 전직 총리이자 정계 막후 실력자였던 다나카 가쿠에이를 기소하면서 밝힌 "오직 증거를 따라 여기까지 왔을 뿐"이라는 한마디는 아직도 일본 사회에서 널리 칭송되고 있다.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증거만을 쫓아 수사할 때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법이다.

다음 정권이 들어서면 검찰은 이명박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겠다고 또다시 달려들 것이다. 그런 모습보다는 지금 한창 권력의 그늘에서 서식하고 있는 비리를 찾아내 단죄하는 검찰이 더 보고 싶다.

이충재 편집국 부국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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