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鄕愁)에 젖어 돌아보면 감미롭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순간들에 대해, '저녁노을에 비치면 모든 것은 향수의 유혹적인 빛을 띠고 나타난다. 단두대까지도 그렇다'( 중에서)고 했다.
내게도 유쾌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정겨운, 빛 바랜 추억의 영상이 있다. 40년 가까이 전 내가 자란 시골 면소재지 초등학교 4학년 교실의 좀 황당하고 '비교육적'인 장면이다.
돌이켜 보면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원래는 실력파였다던 선생님은 그때 이미 병색이 뚜렷했다. 당시 40대 중반에 불과했을 텐데 간이 말라 얼굴은 꺼멓게 타 있었고, 누르스름하게 퇴색한 눈빛은 늘 퀭했다. 술 때문이었다.
반장에게 교탁 아래 늘 대두병으로 소주를 사다 놓도록 시켰던 선생님이 한번은 느닷없이 책걸상을 모두 교실 뒤쪽으로 밀어놓으라고 하셨다. 그러더니 교탁에서 소줏잔을 기울이며 1ㆍ2번, 7ㆍ8번 하는 식으로 이웃한 번호의 아이 둘을 무작위로 불러내 수건으로 주먹을 감싸게 한 뒤 권투시합을 하라는 것이었다.
주저주저 하던 아이들이 결국 독 오른 강아지들처럼 툭탁거리게 되면 선생님은 불콰한 얼굴로 싸움판이 되다시피 한 권투시합을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이윽고 판세가 기울어 한쪽 아이가 거의 울상이 되면 그제야 선생님은 진 아이를 불러 동전 한 개를 손에 쥐어주고 그 아이의 샅을 손으로 훑으며 '비장의 가르침'을 주셨다.
"어디, 붕알(불알의 방언) 좀 보자. 어이, 이 눔 이제 다 컸네. 붕알두 다 큰 눔이 좀 맞았다구 울면 되나. 남자는 말여, 파이팅인겨 파이팅! 알았지?"
요즘이라면 큰일 날 만한 시골 학교의 '비교육적 상황'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작가 이문열씨의 중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엄석대랑 꼭 닮은 음험한 독재자 같은 반장도 있었고, 중학교 땐 무지막지한 각목으로 발바닥 때리는 게 특기인 '작살봉'이란 별명의 선생님도 계셨다.
하지만 그런 일이 교육적으로 나와 친구들에게 해롭기만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기찻길 옆 오막살이' 같았던 그 속에서도 무럭무럭 자라난 우리들은 가끔 취기에 젖어 그때 일을 떠올리면 낄낄거리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때 그 폭력과 압제, 부조리와 화해하며 견디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우리 같은 촌놈들이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헤쳐왔겠냐구. 그러니 그게 모두 산교육이었던 셈이지."
서울의 모든 초중고교에서 직ㆍ간접 체벌이 전면 금지된 데 맞춰 새삼 추억을 떠올린 건 체벌금지가 잘못이라는 얘길 하려는 게 아니다. 향수에 젖어 '모든 비교육적인 것도 교육적'이라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자는 것도 아니다. 일부 자질 없는 교사의 일탈이, 소수 학부모들의 날 선 반발이 오죽했으면 획일적인 규율로 학생들 앞에서 선생님들의 전인적 권위를 훼손하는 이런 조치가 나왔겠는가.
하지만 내 아이가 완전하게 멸균된 교육만 받기 보다는 가끔 억울한 매도 맞고, 부조리한 상황에 견디는 법도 함께 체득하길 바라는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조치를 바라보는 심정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학생인권조례' 추진과 함께 대단한 진보인 것처럼 치는 모양이지만, 나로서는 다시 한 번 편치 않은 미국식 시스템을 적용해버린 요령부득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현장과 소통하며 지속적인 개선을 이루길 바란다.
장인철 생활과학부장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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