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에 청와대가 관련된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와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그제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최모 행정관이 공기업 임원 명의를 도용해 5대의 대포폰을 만들어 윤리지원관실에 비밀통화용으로 지급했다고 밝혔다. 특히 윤리지원관실 장모 주무관은 이 대포폰으로 불법 사찰 기록이 담긴 PC 하드디스크를 영구 삭제한 업체와 통화를 했다고 한다.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폭로 내용을 인정하면서 "구체적인 것은 법정에서 이야기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장관 답변은 한가하다 못해 현실도피적이기까지 하다. 이 문제는 결코 법정에서 다루는 것으로 끝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검찰의 즉각적이고도 강도 높은 재수사가 필요하다. 아니면 특별검사의 수사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검찰은 최 행정관과 그의 직속 상관이며 불법 사찰의 윗선으로 지목된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을 조사한 뒤 무혐의 처분했다. 하지만 새 증거와 정황들은 검찰이 처음부터 청와대의 불법 사찰 개입 의혹 수사에 의지가 없었거나 아니면 은폐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갖기에 충분하다. 고용노동비서관실이 불법 대포폰까지 만들어 업무와 상관도 없는 윤리지원관실에 지급한 것 자체가 범죄의 음습한 냄새를 풍기는데도 이를 허투루 넘긴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주민등록법 위반인 명의 도용 대포폰 제작ㆍ사용 행위를 고리로 청와대의 불법 사찰 개입 의혹을 집요하게 파헤칠 수 있었을 텐데도 관련자 기소는커녕 형식적 조사를 거친 뒤 무혐의 처분한 것은 면죄부를 주기 위한 수사였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청와대 개입 의혹과 관련된 정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윤리지원관실이 청와대에 보고한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 내사 보고서, "민간인 사찰 동향을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이인규 전 윤리지원관의 법정 진술 등은 청와대를 향한 의심을 더 짙게 한다. 그런데도 검찰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다. 검찰은 재수사를 하든지 특별검사 수사를 받든지 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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