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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영화감독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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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영화감독으로 산다는 것

입력
2010.11.0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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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밤중 전화가 온다. "어, 상효냐? 방가방가! 자식아, 나 지금 우리 회사 직원들하고 니 영화 보고 한잔 하는데, 어? 나 몰라? 나야, 나, 1학년 때 내가 니 뒤 앉았잖아. 내가 노숙해 보여서, 입학식 날 니 네 엄마가 나보고 학부형 아니냐고 물으셨다니까? 야, 가만있어봐, 여기 우리 회사 경리 아가씨 바꿔 주께" 그래서 술자리에 있는 생면부지 사람들과 돌아가며 통화를 한다. 문제는 아직도 전화한 친구조차 누군지 명확히 모른다는 거다. 아무튼 고마운 일이다. 내 영화를 회사 직원들까지 동원하며 봐주었으니까.

신분과 나이 초월한 영화 평론

"겨울에 촬영했다는 영화는 다 끝나셨나요? 어, 다 끝났다구요? 왜 내가 몰랐지? 개봉은 안하세요? 어, 했다구요? 내가 왜 몰랐지? 개봉한지 얼마 안됐나 봐요?. 어, 한 달이나 됐다구요?" 이 경우는 난감하다. 내 영화를 몰라서 섭섭한 게 아니라, 뭔가 진지한 관심을 표시하며 조언을 하려는데 그 의도가 자꾸 좌절되는 게 민망해서다.

개봉 다음 주에는 어머니 생신이었다. 팔순의 아버지부터 초등생 조카까지 모였다. "내가 우리 노인정 할머니들 다섯 명 데리고 가서 봤는데, 그 할머니들은 영화를 잘 몰라서 겨우 한다는 얘기가 그 외국 배우가 노래를 참 구성지게 잘 부르네 못 부르네, 이런 얘기밖에 없어요. 영화는 편집을 봐야지 편집을" 자식이 영화를 한다는 이유로 어머니는 영화에 대한 식견을 넓히셨다. 참고로 어머니가 평생에 극장에 가서 본 영화는 내가 만든 영화 딱 세편뿐이다.

이번엔 초등생 조카가 영화 평론가의 표정을 짓는다. "삼춘, 이번엔 주연배우의 연기가 좋았어요. 특히 나는 그 불쌍한 표정이 맘에 들어요. 그런데 영화 속 포스터에는 노래자랑이 어느 대학교 강당에서 열린다고 했는데, 나중에 그 주연배우는 가까운 문예회관에서 열린다고 하잖아요. 그게 옥의 티 같아요" 영화감독이 소설가들에 비해 불리한 건 영화에 대해서는 신분과 연령을 초월해 누구나 의견이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조카가 소설에 대해서 이렇게 날카롭게 얘기하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교수들의 모임에 가면 이제 영화는 남김없이 해부된다. 공대 교수는 먼저 영화 속 의자 만드는 공정의 불합리성에 대해 지적한다. 경영학과 교수는 외국인을 고용했을 경우의 바람직한 노사관리에 대해 한 바탕 강의를 하고, 사학과 교수는 아시아에서 이주의 역사에 대해 깊이 있는 식견을 내놓는다. '몽고라고 부르면 안 되고 몽골이라고 불러야 된다.'는 말은 그 중에서도 뼈아픈 지적이었다. 문학 전공의 교수들은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노력한다. 영화 곳곳에 산재한 이야기의 구멍들이 지적된다. 온 몸을 바늘로 찔리는 것처럼 아프다. 매체의 차이나 산업적 한계 등을 들면서 항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들의 말이 맞다. 어느 매체에서나 좋은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인 것이다.

어느 자리에서나 '직업이 영화감독'이라고 하면 단번에 화제는 그리로 집중된다. 모든 발권이 전산화 돼 있는 21세기에도 "나중에 영화 티켓 좀 주세요."라는 사람도 있고, "연예인 누구와 누구는 진짜로 사귀는 거 맞아요?"라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영화 산업이 예전보다 팽창한 요즘은 아들이나 조카가 영화감독, 배우 지망이라면서 본격적으로 상담을 해오는 경우도 많다.

최고의 찬사는 "즐거웠다"

내가 잘하는 건 그들을 포기시키는 것이다. 공부에 집중하는 게 확률적으로 훨씬 유리하다. 아들에게도 절대로 이 길을 권하지 않는다. 나는 안다. 혼자 삭였던 수많은 상처와 절망들을.

상당히 많은 분들이 이메일도 보내주셨다. 어느 분이 보내 주신 글이 내가 이번에 들은 최고의 찬사였다. "같이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같이 영화를 봤는데, 너무 즐거워했습니다." 좋은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일은 한 것 같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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