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시간이었다. 노와 사가 손을 맞잡는 데 무려 1,895일이 걸렸다. 파업과 징계, 농성과 고발, 직장폐쇄와 단식투쟁으로 점철된 기륭전자 비정규직 근로자 해고문제가 마침내 해결됐다. 사측은 해고자 10명을 2012년까지 직접 고용하기로 했고, 노조는 고소 고발을 모두 취하하고 어떤 비방과 농성, 집회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비정규직 문제'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기륭전자 사태는 이렇게 승자도 패자도 없이 일단락됐다.
2005년 7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노동조건 개선 요구로 시작된 노사분규는 많은 상처를 남겼다. 처음 200명이었던 농성 근로자들은 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고 10명만이 살아남았다. 회사도 정규직 전환 거부로 얻은 것보다 잃은 게 훨씬 많았다.'비정규직 탄압'이라는 노동계의 비판으로 회사 이미지가 떨어졌고, 그 여파로 수출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노사 모두 한 발도 물러서지 않은 채 팽팽한 강경 대립을 고집한 결과이다. 노조는 무조건 정규직 전환만을 주장했고, 사측은 직접 고용 절대불가 원칙을 꺾지 않았다. 진작 한 발씩 양보하는 자세로 대화하고, 타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뒤늦게나마 노사가 상대의 고통과 손실을 생각하고 상생과 화합을 선택한 것이 다행이다.
기륭전자 사태는 노사관계, 고용문제에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어떤 것도 대립과 갈등으로는 얻을 수 없다는 사실, 아무리 극한 대립이라도 상호 존중과 대화 속에 타협의 길이 있다는 사실의 확인이다. 기륭전자 합의에서 사측은 굳이 해고자를 고용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바꾸었고, 노조는 숫자를 고집하지 않았다.
지금도 곳곳에서 노사의 양보 없는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경북 구미 KEC는 타임오프제 도입을 놓고 파업과 직장폐쇄, 검거와 분신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치닫고 있다. 여기에 동조해 금속노조는 G20 회의가 열리는 11일 총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현대차의 파견근로자 문제도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노사 모두 기륭전자의 교훈을 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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