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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한중 마르크스주의 연구자회의/ 정문길 고려대 명예교수-장이빈 난징대 부총장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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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한중 마르크스주의 연구자회의/ 정문길 고려대 명예교수-장이빈 난징대 부총장 대담

입력
2010.11.0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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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 29일 인하대에서 열린 제1회 한중 마르크스주의 연구자회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양국 학자들의 이해와 연구 수준을 확인하는 학술행사였다. 이 행사는 중국 내 마르크스주의 이론 연구의 중심지인 난징대가 한국의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관심을 갖고 양국 연구자들의 교류를 제안해 이뤄졌다. 첫 행사에는 중국 측 13명 등 양국 학자 30여명이 참석했다.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하는 한국과 중국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 그리고 학자들의 관심사도 달랐지만 이들은 21세기의 사상적 좌표로서 마르크스주의가 여전히 유효하리라는 인식을 같이했다.

회의에 참석한 국내 마르크스 문헌학의 대가인 정문길(69) 고려대 명예교수, 유럽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권위자인 장이빈(張異賓ㆍ56) 난징대 부총장이 대담을 가졌다. 최근 난징대출판부가 중국어로 번역출간한 정 교수의 저서 (문학과지성사 발행)에 대한 중국 내 반응으로 말문을 연 이들은 마르크스주의 해석의 문제점, 연구의 과제와 전망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_ 한국의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대해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는가.

▦장이빈= 솔직히 한국에서 진행된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2000년대 중반 독일과 일본 자료에서 정문길 교수님의 명성을 확인했고 관심을 갖게 됐다. 정 교수님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오리지널(육필 텍스트)을 연구해오셨는데 중국에는 이런 학자가 없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전체적으로 한국 마르크스주의 연구 수준은 중국에 미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분단체제 하의 한국에서 마르크스의 저작들이 오랫동안 소개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에서 나타난 마르크스주의의 실천적 힘과 이론 연구의 격차는 큰 것 같다.

▦정문길= 남한에서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공산주의 수괴로 취급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헌은 소지조차 어려웠다. 나는 1965년 마르크스의 소외론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썼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1979년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에서 마르크스가 속해있던 청년헤겔학파의 문헌을 수집해 공부했는데 그때 마르크스의 오리지널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장= 정 교수님이 2008년 특강을 위해 난징대에 오셨을 때 30년 동안 한국에서 외로웠다며 중국에서 지우(知友)를 만났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인상에 남는다. 당시 학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_ 중국 학계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은 어떤가.

▦장= 한국에서 마르크스가 학술적 연구 대상이 아니라 사회변혁을 위한 운동권의 철학으로만 활용됐다면, 중국은 개혁개방 이전까지 스탈린 식으로 마르크스를 해석하는 교조주의적이고 피상적인 연구가 이뤄졌다. 그러나 이후 마르크스를 자율적으로 해석한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난징대는 2006년부터 독일 영국 러시아 캐나다 미국 등의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과 함께 매년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요즘은 마르크스와 니체, 하이데거 등 다른 서구 사상가들을 비교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정= 중국은 문화혁명이 끝날 때까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자율적인 연구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1990년대부터는 루카치, 데리다, 알튀세르 등 유럽 마르크스주의자 연구 붐이 일었다. 최근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 번역과 연구 프로젝트에 거액을 투자하는 등 문헌학적 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 난징대에 가봤더니 영국의 테렐 카버, 러시아의 G A 바가투리아 같은 세계적인 마르크스 엥겔스 연구자들이 특강을 하더라.

_ 마르크스의 목표가 사적 자본의 폐지였다면,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는 중국에 마르크스주의란 어떤 의미인가.

▦장= 사유재산의 폐지라는 최종 목표는 확고하다. 하지만 마오쩌둥 주석은 역사발전 단계를 무시하려다가 실패했다. 반대로 덩샤오핑 주석은 단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경제발전을 당면 목표로 내걸었다. 지금 중국은 최종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 마르크스는 원시공산사회, 중세봉건사회, 자본주의사회를 거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다는 사회발전 단계설을 폈다. 그런데 볼셰비키, 마오쩌둥, 김일성 같이 급진적으로 혁명을 주도한 이들은 그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가 모두 실패했다. 중국은 지금 그 단계를 뛰어넘지 않고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시대 탓인지 중국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의 인기는 조금 시들해졌다고 들었다.

_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에서도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이 많다. 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해야 하는가.

▦정=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비판하는 무기로서 마르크스의 언어만큼 뛰어난 것은 없다. 그러나 혁명가 마르크스만큼 사상가로서의 마르크스도 중요하다. 독일 학술원에서 대사상가들의 전집?발행하는데 마르크스를 스피노자, 괴테와 같은 반열에 놓는다. 19세기 고전 사상가로서의 마르크스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당대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장=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르크스주의라고 하면 투쟁적이고 급진적인 사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 같은데 이는 오해이자 편견이다. 마오 주석은 마르크스주의를 혁명적 차원으로만 이해했다. 그러나 덩 주석은 이를 모든 국민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사상,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상으로 받아들였다. 마르크스와 앵겔스는 구호만 외치는 혁명가가 아니라 과학으로 혁명을 설명한 사상가였다.

_ 체제를 초월한 마르크스주의의 보편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장= 요즘 중국에는 경제발전에 따라 등장한 재벌2세 격인 ‘푸얼대(富二代)’들의 향락적인 소비가 사회문제가 되고있다. 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 모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이들은 평생 자본주의의 모순을 열심히 찾고 그 대안에 대한 사상적 모색을 거듭했다.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해준다.

▦정= 정년퇴임 후에도 학교에서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을 강의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경제학ㆍ철학 초고’나 ‘공산당 선언’ 같은 마르크스의 원저작을 요약하고 감상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한다. 원저작의 주옥 같은 부분을 직접 확인하고 인문주의자로서 마르크스를 인식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런 관심들이 우리의 문화적 자산으로 용해돼야 할 것이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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