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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추억과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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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추억과 속도

입력
2010.11.0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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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기찻길 옆에 살았다. 진해역에서 창원역까지 느릿느릿 달려가 경전선과 이어지는 기찻길이었다. 기찻길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기차가 올 시간이 가까워지면 철로 위에 귀를 대면 아주 멀리서 철거덕 철거덕 기차바퀴가 굴러오는 소리가 들렸다.

못을 철로 위에 올려놓고 기차가 지나간 뒤 납작해진 못을 갈아 칼을 만들기도 했다. 기차를 타는 것이 신나는 일이라 아버지를 따라 할아버지 댁까지 가는 역 이름을 다 외워버렸다. 진해역에서 출발하면 경화, 성주사, 상남, 용원, 창원까지 가 기차를 갈아타고 덕산, 진영, 한림정, 낙동, 삼랑진, 원동을 지나 물금역에서 내렸다.

물금 다음이 낙동강을 건너간다는 구포역이었지만 그땐 가보지 못했다. 중학생 땐 경화역에서 저녁 6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는데 다음날 오전 11시 용산역에 도착했다. 하룻밤을 자며 15시간을 달려서 서울에 도착했다. KTX 고속철도 2단계가 개통됐다.

내가 주소를 둔 울산에도 KTX역이 생겼다. 울산에서 서울까지 평균 2시간 9분의 속도로 달려간다고 한다. 빠르다. 빨라서 편리한 것도 있지만 그 빠른 속도에 기찻길 옆에서 보낸 유년의 추억들이 바퀴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산산조각 나는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기찻길 옆'이란 동요조차 배우지도 않는다고 한다. 기차가 추억이 아니라 속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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