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1일 유남영 문경란 상임위원의 동반사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된 것은 현병철 위원장 체제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쌓인 결과로 보인다. 차관급으로 '넘버 2' 위치에 있는 상임위원들이 '고사(枯死)' 단계로 규정할 만큼 인권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데다 이 문제가 현 위원장의 독선적 조직운영과 정책방향에 기인하고 있다는 실망과 분노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이다.
실제로 문위원은 "현 위원장 부임 이후 인권위가 파행과 왜곡의 길을 가고 있다""기준과 원칙을 바꾸는 일이 다반사고 적법절차도 잘 지키지 않았다" "인권이 아니라 권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등 현 위원장의 행태를 작심한 듯 비판했다.
사실 인권위가 '식물 위원회' '봉숭아 학당'이라는 비아냥을 듣게 된 게 지난해 7월 현 위원장 취임 이후다. 이는 "당연히 목소리를 내야 할 정치사회적 인권문제에 침묵하고 있기 때문"(김형완 전 인권정책과장)이라는 게 인권위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분석이다. MBC PD수첩 사건 재판부에 대한 의견 제출 건(2009년 12월), 집시법상 야간시위 규정에 대한 헌재 의견 제출 건(2010년 2월), 박원순 사건 재판부에 대한 의견 제출 건(2010년 4월) 등 주요 현안이 모조리 부결된 게 대표적 사례다.
인권위의 이러한 책임방기에 더해 인권위원장답지 않은 현 위원장의 언행이 내부균열을 부채질한 것으로 보인다. 용산 사태에 대한 의견표명을 놓고 벌어진 전원위원회 토의에서 현 위원장은 "독재라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며 일방적으로 중단시키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활기는 없고 오직 윗사람의 눈치만을 본다"는 분위기가 인권위에 만연해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참여정부 때와 180도 달라진 인권위 분위기는 인권문제에 대한 정권차원의 인식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유 위원은 "(인권위가 이렇게 된 데는) 인권에 대한 현 집권세력의 무관심과 경시에서 유래하고 현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임명과정에 자격요건(인권문제에 관한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무시된 데 까닭이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와 현 위원장의 엇나간 행보는 다수 인력의 조직 이탈로 이어졌다. 올 9월 마지막 남은 인권위 1세대 김형완 전 정책과장이 떠났고, 그에 한 달 앞서 김옥신 전 사무총장도 사임했다. 한 인권위 관계자는 "이성훈 본부장, 남규선 시민교육팀장, 이명제 홍보과장 등 아까운 인재들이 지난 1년 사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났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두 위원의 사퇴결심에 결정적으로 불을 붙인 것은 지난주 전원위원회에 상정된 '인권위 운영 규칙 개정안'이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상임위원의 결정안건 역시 위원장에 의해 전원위에 상정해 재의결을 할 수 있게 된다. 유 위원은 "현재 상임위원은 안건 상정 권한도 없는데 의결권까지 막겠다는 것이다. 상임위원의 할 일이 사실상 없어진다"고 말했다. 당시 유 위원과 문 위원은 표결에 앞서 자리를 박차고 퇴장한 바 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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