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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다문화 우리문화] <2부> (2) 대우증권의 다문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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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다문화 우리문화] <2부> (2) 대우증권의 다문화 사랑

입력
2010.11.0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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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모자(母子)가 나타났다. 엄마 화레이(25)씨는 조금 경사진 내리막길이었지만 자전거를 능숙하게 세웠고, 아들 이현(3)군은 겨울용 파카를 입고 입에는 마스크까지 쓴 채 안장 뒤에 달린 유아용 의자에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구로동 다문화복지센터 앞. 전봇대 옆에 자전거를 세운 화씨는 이군을 번쩍 안아 올려 센터 2층에 있는 지구촌어린이마을로 갔다. 어린이마을은 취학 전의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한국어와 각종 특기 교육을 하는 일종의 유아원.

아이를 맡긴 화레이씨는 센터 1층의 다문화여성북카페로 내려와 역시 아들 양성웅(2)군을 자전거에 태우고 와 어린이마을에 맡긴 청옌링(31)씨와 마주 앉았다. 화씨와 청씨는 각각 중국 흑룡강성과 길림성 출신의 결혼이주여성. 화씨는 2007년, 청씨는 2008년 한국 남성과 결혼하며 한국에 와서 살게 됐다.

신대방동에 사는 이들은 왜 왕복 40분이나 걸리는 이곳까지 자전거로 아이를 등원시키는 걸까. 이들에게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버스비 아껴야지요. 남편이 식당에서 음식 배달하는데 월급이 얼마 안돼요. 전에 봉천동에서 살 때는 자전거도 없어서 난곡동 우림시장까지 한 시간 동안 걸어 다녔어요.” 청씨가 말했다. “그리고 버스타면 무섭고 멀미가 많이 나요. 속도가 너무 빨라서요. 지난번에는 현이랑 탔는데 자리에 앉기도 전에 버스가 출발해서 넘어질 뻔 했어요.” 화씨도 맞장구를 쳤다.

“엄마, 저건 뭐야”

날씨가 더 추워지면 아이를 자전거로 등원시키는 게 더 힘들어지겠지만 둘은 센터만은 빼놓지 않고 다닐 거라고 했다. 9월 아이를 어린이마을에 보내기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집에만 있었다. 아이가 어려 직접 돌봐야 하기도 했지만 유아원에 보낼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문제는 한국어였다. 아이들은 한창 말을 배워야 할 나이였지만 남편은 종일 밖에서 일을 했고 한국말이 능숙치 않은 화씨와 청씨가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화씨는 “아이가 한창 궁금한 게 많을 때라 함께 밖에 나가면 ‘엄마, 이건 뭐야, 저건 뭐야’라고 계속 질문을 해요. 그런데 내가 답을 해 줄 수가 없으니까 정말 미안하고 답답해요”라고 말했다. 한번은 뒤에 둥근 통을 달고 달리는 레미콘을 본 이군이 신기한 듯 “저건 뭐야”라고 물었지만 “음, 자동차야”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린이마을을 다닌 후로는 이군이 오히려 엄마더러 “엄마, 저거 뭔지 알아, 사다리차야”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어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청씨는 “나랑 집에서 둘만 있을 때는 뛰어다니기만 하고 밥도 잘 안 먹던 애가 어린이마을에서는 친구들이랑 같이 있어서 그런지 밥을 잘 먹어요. 어린이마을 오는 걸 무척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아이가 생긴 후 처음으로 자신들만의 시간도 생겼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아이가 어린이마을에 있는 동안 센터 1층에 있는 이주여성센터에서 한국어 요리 컴퓨터 등을 배운다. 중국 한족인 이들은 결혼 전까지는 한국어를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어 한국어가 어렵기만 하다. 각각 상급반과 중급반을 다니고 있는 화씨와 청씨는 “하기 싫고 어려울 때도 있지만 아이랑 대화하고 더 잘 가르쳐 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해요”라고 입을 모았다. 수업이 없을 때는 결혼이주여성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북카페에서 다른 엄마들과 차를 마시며 수다도 떨고 책도 읽을 수 있다.

‘종합 복지 세트’

센터 바로 왼쪽 건물에는 이주민의료센터와 쉼터, 그 왼쪽 건물에는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가 있다. 근로자지원센터에서의 법률상담부터 의료센터에서의 진료와 아동 및 이주여성 교육에 이르기까지 이주민들이 필요한 것들을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이곳은 가히 ‘종합 복지 세트’라 할 만했다. 이주여성센터 어린이마을 지구촌지역아동센터가 있는 센터 본 건물은 3월 문을 열었지만 의료센터와 근로자지원센터는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외국인 이주민들과 함께 해 왔다.

무엇보다 이 ‘종합 복지 세트’는 모두 무료다. 사단법인 지구촌사랑나눔이 운영하고 있는 이 센터들의 연간 운영비는 13억원(근로자지원센터 제외)인데 이 중 10억원 이상이 기업 후원금이다. 후원하는 기업만 40개가 넘는다.

지난해 9월부터 의료센터와 어린이마을을 후원해 오고 있는 대우증권이 이날은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해 만든 책 를 보내왔다. 김치 찌개 찜 주먹밥의 요리법이 한국어와 중국어로 함께 적힌 책을 받아 든 화씨와 청씨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청씨는 “외동딸로 자라 중국에서는 요리 한 번 해 본 적 없었는데 갑자기 한국 음식을 만들려니 너무 어려웠어요. 어쩔 수 없이 한국말로 된 요리책을 사서 혼자 해 보며 요리 배웠는데 새로 한국에 오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정말 좋아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자랑스러운 엄마

화씨와 청씨는 일자리 얘기가 나오자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4~5년 후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남편 월급 만으로는 교육비가 빠듯하다.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아이들이 어린이마을에 있는 동안만 할 수 있는 일을 구하기가 쉽지가 않다고 했다. 이들의 꿈은 뭘까.

요리를 좋아하는 화씨는 영양사가, 청씨는 중국어 가르치는 교육을 받아서 중국어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돈도 돈이지만 떳떳한 직업을 가져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청씨가 말했다. “우리 신랑들 돈 없는 사람들이니까, 부자들은 외국 여자랑 잘 안 사니까 정부에서 다문화가정에는 어린이집이랑 학교를 무료로 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잘 살고 싶어요.”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 이주여성 위한 요리책 발간 '인기몰이'

"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라."

대우증권 사회봉사단의 다문화가정 지원사업의 핵심 가치다. 하기 좋고 듣기 좋은 말 몇 마디 건네고 사진 한 장 찍고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 다문화가정에 진짜 필요한 도움을 주겠다는 것.

가장 절실한 도움 두 가지는 음식과 언어였다. 김성철 사무국장은 "중소 도시의 다문화가정을 방문 해 보니 요리법을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요리 못한다고 혼내는 가족들이 적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시중에는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한국 요리책이 단 한권도 없었다. 결국 대우증권은 직접 요리책을 만들기로 했다.

지난해 연말 시범적으로 '요리 달력'을 냈다. 탁상용 달력 한 면이 둘로 나눠져 한 쪽에는 날짜가, 다른 쪽에는 7개 국어로 찌개 김치 등 한국 요리법이 적혀 있는 달력인데 2만2,000부가 4일 만에 동났다.

2월 본격적인 요리책 제작을 시작하자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에서 요리법과 요리 사진을 무료로 제공해 줬고, 7개 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실제로 각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들이 했다. 국내 최초의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요리책 <다문화가정을 위한 한국요리> (사진)는 총 160페이지로 각종 김치 나물 찌개 명절음식 등 45가지 요리법을 담고 있다. 각국 언어 옆에 한국어도 함께 적혀 있어 한국어 공부도 덤으로 할 수 있다.

대우증권은 지난달 초 전국 다문화지역센터 등에 이 책 2만4,000부를 무료로 배포했다. 이달 초에는 3만부를 추가로 찍어 출입국사무소에서 국내에 입국하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바로 주기로 했다. 박승균 단장은 "다문화복지센터를 이용하지 못하는 여성들도 많고, 처음 왔을 때가 적응하기에 가장 어려운 시기인 만큼 법무부와 협의해 입국과 동시에 요리책을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하나 색다른 점은 대우증권의 언어 지원은 한국어 교육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 현재 전국 10곳의 센터를 후원하며 한국어 교육을 돕고 있는데 어머니의 국어를 지키는 데도 앞장설 계획이다. 내년에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어머니말 경연대회(가칭)'를 열 예정.

박 단장은 "다문화가정의 시부모나 남편들은 아이가 어머니의 모국어를 배우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며 "대회를 통해 어머니 모국어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두 개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훌륭한 인재를 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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