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총을 들었던 게릴라 출신 여전사가 브라질 40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혁명자금을 마련하려 은행강도도 불사했던 이력 등 당선자 지우마 호세프(62)의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듯 극적인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브라질 첫 여성 대통령이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또한명의 세계 여성리더가 탄생한 31일 브라질 최대도시 상파울로와 수도 브라질리아에서는 지지자 수백명이 모여 노동자당(PT)의 붉은 깃발을 흔들며 삼바춤을 추며 환호했다.
발레리나 꿈꾸던 소녀, 마르크스주의 심취하며 투사로
수채의 집과 하인들을 거느린 부유한 불가리아 이민자 가정 출신 호세프는 유복한 환경에서 불어와 피아노 등 서구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어린시절 꿈은 발레리나였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한 이후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면서 투사로 변신, 1960년대 군부 독재정권에 맞서 좌익 반군 단체 NLC 등에 가담하면서 투옥되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2008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호세프는 “앵무새 횃대 고문과 전기고문을 수차례 받았다”며 회고하기도 했다.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끝까지 조직을 지킨게 전설처럼 알려지면서 호세프의 이름은 조금씩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무장단체 시절 법을 어기고 범죄를 저지른 경력이 정치권 입문 이후 부담이 되기도 했으나 호세프는 “(무장활동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으며)어디까지나 정치적인 개입일뿐이었다”며 선을 그었다. 룰라 대통령 역시 “그녀의 인생역정은 (한때 무장단체를 조직한)만델라를 떠올리게 한다”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옹호했다.
주정부 에너지장관으로 지방에서 명성을 인정받은 호세프는 2000년 브라질 전력난때 전력회사 민영화 등 과감한 정책을 편 게 룰라의 눈에 띄어 2003년 집권 후 연방정부 에너지장관에 발탁됐다. 선출직 경험은 없으나 2005년부터 총리격인 정무장관으로 지도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브라질의 어머니’로 각인
지난해 10% 미만에 머물렀던 지지율 역시 룰라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급반전했다. 두차례의 이혼한 경력과 림프종 투병 등 건강상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으나 카메라 앞에서 가발을 흔들어 보이는 등 솔직하고 명랑한 태도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때론 엄마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며 선거기간 내내 감성적으로 호소한 것도 주효했다. 남녀차별이 극심한 브라질 사회에서 ‘강한 여성’의 대명사였던 호세프는 유세과정에서 친(親) 서민 행보로 변신을 꾀했다. 원래 별명은 ‘철의 여인’불렸던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에서 따온 ‘브라질의 대처’다.
대권후보로 지목되면서 성형 등을 통해 촌스럽고 세보이는 외모도 바꿨고, 최대한 부드러운 인상을 주도록 화장법과 헤어스타일도 교정했다. 2002년 룰라 대통령이 늘상 입던 작업복을 벗고 고급정장으로 과격한 이미지를 희석시켰듯 호세프도 어머니이자 할머니로서의 면모를 강조하며 이웃집 아줌마 같은 푸근함으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갔는데, 이런 전략이 호우세피를 ‘브라질의 어머니’로 각인시켜 표심으로 연결됐다. 10년 전 두번째 남편과 이혼한 호세프 당선자는 현재 외동딸과 9월에 태어난 손녀와 함께 살고 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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