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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무의 선비 이야기] <58> 노비출신 형조판서 반석평(潘碩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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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무의 선비 이야기] <58> 노비출신 형조판서 반석평(潘碩枰)

입력
2010.11.01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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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평은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潘基文)의 조상이다. 그의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그는 본래 서울에 살던 이참판 집 종이었다. 종은 원래 조상이 포로이거나 범죄자, 채무자였는데 공민권이 없어서 과거시험도 볼 수 없었고, 관리가 될 수도 없었다.

반석평은 비록 종(奴)이었지만 공부가 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자기와 나이가 비슷한 주인 집 아들 이오성이 독선생에게 글을 배우는 방 밖에서 도둑공부를 시작했다. 이오성은 를 읽고 있었다. 천성이 영민한 반석평의 도둑공부는 일취월장(日就月將)했다. 글은 배우는 족족 외우고, 글씨는 땅바닥에 썼다. 그러다가 들키면 꾸중을 듣기도 했다. 그리하여 집안 사람들이 반석평의 도둑공부를 다 알게 되었다. 그러나 공부의 수준이 어느 정도 높아지자 책을 직접 읽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오성을 설득해 책을 빌릴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참판이 불러 다리를 좀 주무르라 했다. 반석평은 책을 읽느라 다리를 건성 주무르다가 이 참판의 힐책을 받았다. 반석평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이실직고(以實直告)했다. 이 참판은 오히려 기특하게 여겼다. 얼마 후 반석평은 이 참판에게 집을 나가 공부를 좀 더 해 과거시험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이 참판은 그 청을 선뜻 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반석평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후손이 없는 친척 집의 양자가 되게 해 주었다.

반석평은 열심히 공부해 1507년(중종2)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했다. 그 후 그는 예문관 검열, 경흥부사, 만포진첨절제사, 함경남·북도 병마절도사, 동지중추부사, 형조참판을 역임했다. 그런데 그가 형조판서로 있을 때, 초헌을 타고 입궐하는 도중에 거지가 다 된 주인 집 도령 이오성을 발견하고 집으로 데리고 와 그동안 양반행세를 한 죄를 사과하고 다시 옛 주인의 종이 되겠다고 했다. 그리고 왕에게도 나라를 속인 죄를 처벌해 달라고 요청했다. 왕은 오히려 기특하게 여겨 그를 용서해주고 이오성에게도 사옹원 별제 자리를 내려 주었다.

그러나 그가 국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 이 참판이 스스로 노비문서를 불태워 종양(從良)해 주었고, 문과에 정식으로 급제했으니 법적으로는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다만 도덕적으로 자기를 발신시켜준 이 참판의 아들이 몰락한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취한 양심고백에 불과한 것이다.

반석평의 시호는 장절공(壯節公), 묘는 본래 경기 남양주 조안면에 있었던 것을 지금은 선영인 충남 음성군 원남면 호로리 산 4 번지에 있는 광주반씨장절공파묘역(光州潘氏壯節公派墓域)으로 옮겼다. 노비의 공부하고 싶은 염원이 신분의 장벽을 넘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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