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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문단 뒤흔든 18세 작가 헬레네 헤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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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문단 뒤흔든 18세 작가 헬레네 헤게만

입력
2010.10.3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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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1992년생 작가 헬레네 헤게만은 15세 때인 2007년 희곡을 발표하고 이듬해 연출ㆍ각본을 맡아 영화를 만드는 등 일찍부터 다방면에서 예술적 재능을 보였다. 소설 쓰기에도 나선 그가 올해 1월 출간한 은 독일 문단을 두 번 놀라게 했다. 약물과 섹스에 탐닉하는 16세 소녀 미프티를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주요 언론과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한 달 뒤 이 소설의 일부가 반년쯤 앞서 나온 독일의 무명 작가 아이렌의 소설 와 고스란히 겹치고 헤게만이 다른 사람에게게 받은 메일 내용을 소설에 무단으로 썼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번엔 표절 논란이 불거졌다. 헤게만을 비난하는 여론이 비등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가치는 여전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표절이 아니라 뛰어난 몽타주텍스트”라는 적극적인 옹호론도 제기됐다.

국내에서도 최근 베스트셀러 소설의 표절 시비가 잇따르면서 ‘혼종의 장르인 소설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오래된 물음이 새삼 제기된 가운데 의 한국어 번역판(열린책들 발행)이 최근 출간됐다. 이 작품을 번역한 소설가 배수아씨의 도움을 받아 올해 독일 문단의 가장 뜨거운 화제인 작가 헤게만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_ 평생 올챙이 상태에서 변태하지 않는 도롱뇽인 ‘아홀로틀’과 인간 문명의 대표 격인 자동차에 치여 죽은 야생동물을 뜻하는 ‘로드킬’은 사회와 온몸으로 불화하는 주인공 미프티를 형상화하는 소설 제목인 듯하다.

“처음엔 두 단어 중 하나를 제목으로 삼으려다가 불현듯 둘을 하나로 합치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랬더니 내 안에서 복잡하게 뒤엉켜 있던 비합리적인 것과 명징함의 관계가 균형을 찾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이 제목은 즉각적인 분석이 불가능하면서도 사람들을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효과가 있다. 주인공을 해체, 분석하는 것은 제목이 지닌 힘을 무력하게 만들 뿐이다.”

_ 미프티는 늘 마약에 취해 클럽을 전전하고 그녀의 진술 중 상당 부분은 환각 상태에서 나온다. 이런 인물을 생생하게 묘사하려면 취재에 많은 공을 들였을 텐데.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 소설에서 마약과 클럽이 나오는 부분은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하지만 독자들은 대개 마약이나 하는 틴에이저가 환각에 빠져 쓴 글이라는 환상에 쉽게 유인 당하고 만다. 인간이란 원래 관음증적이니까. 미프티의 이력은 얼마간 나와 비슷하지만, 그것은 작가로서 주인공이 처한 입장을 잘 알고 있는 상태로 글을 써나가려 했기 때문이다. 실제와 픽션의 경계를 허물어 썼기 때문에 어떤 것이 내 체험인지 말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그걸 구분하지 않는 게 이 책을 읽는 최선의 방식이다.”

_ 미프티는 엄마의 폭력과 방치 속에 성장했고 아버지와 배다른 형제들과 갈등을 겪는다. 이것이 그녀가 일탈적 삶을 사는 이유인가.

“심리학적 작업엔 관심이 없다. 그건 19~20세기에나 유행했던 것으로, 복잡하게 얽혀 움직이는 오늘날 세상에서 일어나는 특정한 행동양식을 설명하기엔 너무 단순하고도 불필요하다. 이 작품에서 미프티를 통해 드러내고자 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결정성’이다. 그녀는 순전히 의식적 선택에 따라 무절제한 체험을 한 뒤 그것을 분석하고, 약에 취한 환각 상태를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감정한다.”

_ 소설,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다. 창작자로서 서로 다른 매력을 느낄 듯하다.

“소설은 두 번 다시 쓰지 않을 것이다. 작업 과정이 너무나 자폐적이고 단자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보다 예술적 생산 과정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내 글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배우들의 반응을 기대하며 긴장한다. 이야기란 여러 예술적 개인들이 각자의 사고를 더할 때 비로소 완성되고 새로운 차원으로 재탄생한다.”

_ 이 소설을 둘러싼 표절 논란에 대한 정확한 입장을 듣고 싶다.

“여기서 ‘표절’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된다. 내가 이미 발표된 문장들을 변형해 인용한 방식은 지난 500년 간 발표된 무수한 소설들에 비춰볼 때 전혀 별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표절 논란 이후 이 소설 개정판에 수록한) 인용문 출처 목록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무슨 소리야, 난 너무 흥분돼서 죽겠단 말이야!’ 이 문장이 목록에 들었다고 해서 내가 이런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건가, 만약 했다면 이 문장은 목록에서 빠져도 된다는 건가. 나는 아이렌을 매우 뛰어난 작가라고 보지만, 그 역시 다른 작가들의 글을 다수 인용했다. 그러므로 텍스트의 진짜 작가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은 그 자체에 답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조립된’ 인물이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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