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위·힘의 시대 지고 '소프트 파워 시대' 만개
21세기 여성 리더십의 부상을 가장 잘 예측한 학자 중 하나가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다. 그는 20세기에 쓴 저서 에서 “21세기는 여성(Female) 감성(Feeling) 상상(Fiction)이 주도하는 ‘3F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이라고 전망했었다. 사회 체계가 빠르게 변하면서도 특정한 방향으로 가지 않은 다극화 시대, 그리고 지식과 창의가 중요해진 소프트파워 시대를 맞아 그가 내놓은 3개 키워드는 사실상 현재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회변혁의 새로운 주체로 여성 리더십의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대적 흐름이 바뀌다
여성의 역할이 주목받는 것은 사회 자체의 변화에서 기인한다. 가장 큰 이유는 생산수단의 진보다. 과거 남성이 우월한 노동력이 생산 확대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면 산업화 시대에는 기술이, 정보화 시대에는 지식과 창의성이 보다 큰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즉 권위와 힘으로 상징되는 남성적 리더십보다는 정형화하지 않은 사고방식을 가진 여성 리더십이 부상할 토양이 구축된 것이다.
조직 문화의 변화도 중요한 요인이다. 과거 조직이 명령과 복종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형태였다면 이제는 정보화시대를 맞아 유연하게 대처하고, 섬세하게 해결할 수 있는 다원화한 조직 구조가 요구되고 있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사고가 필요한 조직과 그런 능력을 보유한 리더가 사회의 중심에 설 상황이 된 셈이다.
사고방식의 다양화도 여성 리더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남성 위주의 시대에선 인구의 절반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체제와 소통 방식, 의사 결정 구조가 남성적 리더십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조적 시각을 보유한 여성 리더십이 힘을 얻고 있다.
양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회ㆍ문화적으로 특정 이슈에 대한 문제 해결 방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창의성이 뛰어난 여성 리더십이 더 각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소통과 배려로 말하다
유엔안보포럼은 21세기 네트워크 시대를 맞아 의사소통 능력이 우월한 여성이 주목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과거 조직의 의사 결정이 리더 1인에 의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조직 내부의 소통에 의한 합의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여성 리더십이 각광받는다는 얘기다. 김양희 젠더앤리더십 대표는 이 같은 여성의 소통 경쟁력이 문화적으로 오랜 기간 축적된 여성의 스토리텔링(Storytelling) 능력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배려 리더십도 여성의 주요 경쟁력이다. SBS 드라마 의 최초 여성 대통령 서혜림이 보여 주는 리더십이 바로 배려다. 정여울 문학평론가는 약자를 짓밟아 권력을 성취하는 남성적 카리스마가 아니라 지배하지 않음으로써 진정 지배하는 배려 여성상이 서혜림의 역할에서 나온다고 분석했다. 진취적이고 주도적인 기존 리더십이 퇴색한 건 아니지만 다양성이 존중하는 시대에서 창의적 아이디어와 생산적 대안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배려가 큰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감성과 창의성도 여성 리더가 기존 남성 위주의 틀을 깨는 주요 동력이다. 특히 제품 개발, 디자인, 마케팅 분야에서 창의성이 필수적인 기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상화 양성평등교육진흥원교수는 “소통 창의 배려 코칭 등 능력이 여성 리더십의 대표적 키워드로 볼 수 있다”며 “21세기 환경과 팔로어(조직 구성원) 인식 변화가 여성의 이런 능력을 확산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 여성 리더십 변화상
여성 리더십은 시대에 따라 그 이미지가 변화하고 있다. 과거 여성 리더가 거의 전무했던 시기에는 남성처럼 강하고 도전적인 리더십으로 조직을 지배했다면 이제는 여성 리더 증가 및 사회제도 변화와 함께 여성 본래의 이미지가 강점으로 부각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여성 지도자가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근대 여성 리더십의 원조는 ‘철의 여인’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 부드러움과 포용보다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리더십을 바탕으로 1979년 수상이 된 대처는 노조 요구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카리스마로 영국병을 치료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여성의 정체성으로 좀더 부각시킨 경우다. 그는 77년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한 아칸소대리인협회를 만들었고 95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에 참여해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며 여성 리더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도 남성 중심의 미국사회에서 흑인과 여성의 이중장벽을 넘어 흑인 여성 최초의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으로 여성 리더십의 큰 획을 그었다.
이런 여세를 몰아 세계 정치권에서는 이미 많은 거물들이 탄생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005년 독일 최초 여성 총리로 당선된 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여성 1위 자리를 지켜 오고 있다. 여풍이 센 핀란드의 경우 올 6월 마리 키비니에미 총리가 당선되면서 총리와 대통령(타르야 할로넨)이 모두 여성인 국가가 됐다.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입었던 아이슬란드 총리도 여성이다.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총리는 지난해 취임 일성으로 “여성의 부드러움으로 위기를 탈출하겠다”고 남성의 엘리트적 우월주의 문제점을 비판했고, 실제로 금융위기 때 국유화한 일부 은행장을 여성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글로벌 기업에서의 활약상도 두드러진다. 인드라 누이 펩시 콜라 회장은 2003년 시장점유율에서 완전 열세에 빠진 펩시의 위기를 조직 내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여성적 리더십으로 극복했다. 최근 미 중간선거에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로 출마한 칼리 피오리나 역시 “사람들은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움직인다”는 여성주의 경영철학으로 휴렛패커드와 컴팩의 합병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유연화한 사회에서는 배려,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 등 여성성이 오히려 무기”라고 말했다.
김청환 기자 chk@hk.co.kr
■ 기고/ 여성적 리더십 근간은 '여성적 사고'
이제 한국을 비롯한 세계는 인간의 감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정보화 디지털화 네트워크화로 촘촘히 엮어지고 있다. 그 발전 속도는 가히 놀라울 정도다. 전통적 산업사회를 물리적 힘의 논리와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고가 지배했다면 우리 앞에 펼쳐진 정보화사회는 부드럽고 섬세한 감성과 창의성, 합리적 설득과 소통에 기초한 여성적 사고가 그 중심을 이루게 될 것이다. 여성적 사고는 곧 여성적 리더십의 근간이다. 여성적 리더십은 나아가 혈연 지연 학연 등 과거의 인습적 사고나 아집 편견 독단 등 독선적 사고를 경계하고 청렴성과 능력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고학력 여성들이 점차 늘어나고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사회 전반에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매우 활발해지고 있다. 남성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던 정치 경찰 군 법조계 체육계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완전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 신장세가 뚜렷한 모습이다.
전문직의 여성 진출도 매우 활발해지고 있다. 사회의 발달과 다양성의 확대로 많은 직업군이 생긴 것도 원인이지만 유교주의에 근간한 남녀 차별을 극복하며 양성평등을 실현하려는 각계 여성들의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이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복잡화해 가고 있는 한국 사회를 미래지향적으로 이끌려면 세상의 반이 넘는 여성의 직관과 지혜가 긴요하다. 그것은 이제 필요조건이 아닌 필요충분조건이다.
여성의 리더십은 담장과 경계를 허물고 시공을 초월해 하나로 소통하는 인터넷시대, 네트워크 경제시대에 더욱 빛을 발휘한다. 사람의 마음에 대한 뜨거운 이해와 차가운 분석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감성경제의 시대에 적합한 리더십이다. 아울러 ‘다가올 위기’라 일컬어지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해법도 여성들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과거 성공한 여성 가운데는 ‘철혈 여성’이란 미사여구처럼 남성보다 더 남성적 리더십을 갖춘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매우 자연스럽게 여성성을 살린 지도력을 갖춰야 진정한 여성 리더라고 할 수 있다. 남성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공존과 조화의 대상으로 여기며 상하좌우를 아우르고 포용하는 마음과 이해심을 바탕으로 소통하면서 섬세함과 창의성을 부드럽게 발휘해야 한다.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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