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959년 사형이 집행된 죽산(竹山) 조봉암 당시 진보당 당수의 간첩죄 판결에 대한 재심을 결정했다. 대법원이 유족들의 청구를 2년 여의 심사숙고 끝에 받아들였다. 학문적으로는 새삼스레 논란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재평가가 정리된 ‘진보당 사건’에 대한 사법차원의 진상규명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 현대사의 커다란 오점을 되돌아 볼 소중한 기회가 마련됐다는 점만으로도 가치가 크다.
58년 1월에 터진 진보당 사건은 처음부터 정치조작 냄새가 짙었다. 앞서 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로 나와 216만 표를 얻은 조 당수를 비롯한 간부들을 대거 구속한 이유는 진보당이 북한 주장과 유사한 유엔 감시하의 남북 총선거를 평화통일 방안으로 제시했고, 그것이 북한 간첩과의 접선 및 공작금 수령을 통해 이뤄졌다는 것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대부분의 혐의가 조작된 것이 드러났고, 59년의 대법원 판결에서 대다수 간부들이 무죄 선고로 풀려났으나 조 당수에게는 사형이 선고됐다. 조 당수는 재심청구가 기각된 이튿날 7월30일 사형이 집행됐다. 아울러 진보당은 최초의 정당해산 명령을 받았다.
이 사건은 한국 정치ㆍ사회가 시달려 온 ‘정치 살인’ ‘사법 살인’의 대표적 악몽이었다. 그 뒤로 오랫동안 ‘색깔론’이 진보적 정치세력의 등장을 가로막았고, 평화통일 구상의 유연성을 제약했다. 이미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인혁당 사건 등의 원형이기도 했다. 공산당 운동에서 발을 빼어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토지개혁 등으로 계급갈등의 불씨 제거에 기여한 조 당수의 공로를 감안하면 더욱 어이없는 결과였다.
대법원은 이번 재심 결정의 주된 사유로 ‘불법적 수사’를 들었다. 군인 이나 군속이 아닌 일반인을 수사할 권한이 없는 육군 특무대가 조 당수를 신문한 행위 자체가 범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적법절차를 무시한 억지 수사와 그에 근거한 판결에 대한 번복 결정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돌이킬 수 없는 과오조차 분명한 반성으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할 문명사회의 과제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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