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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인터뷰] 김성근 SK와이번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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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인터뷰] 김성근 SK와이번스 감독

입력
2010.10.3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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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김응용 삼성 사장(당시 감독)으로부터 ‘야신’(야구의 신)이라는 칭호를 들었던 김성근(68) SK 감독. 6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삼성의 21년 묵은 우승 한을 풀었던 김 사장이었지만, 한 수 아래로 봤던 당시 LG를 이끌던 김 감독의 야구를 처음으로 인정한 ‘사건’이었다.

김 감독은 약체로 평가받던 LG를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올려놓은 뒤 한국시리즈까지 진출, 준우승을 일궜지만, 1인자는 되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를 거쳐 SK로 복귀한 2007년부터 세 개의 우승컵을 쓸어 담으며 명실 공히‘야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2010시즌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에서‘천하통일’을 이루고 대만, 일본과의 챔피언십시리즈 출격을 앞둔 김 감독을 31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만났다. 우승 직후부터 언론사 인터뷰와 훈련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지만, 아시아 야구 챔피언이라는 2010년의 마지막 목표가 남아 있는 김 감독의 표정은 활기가 넘쳐 있었다. SK 선수들을 이끌고 2일 대만 타이중(台中)으로 출국하는 김 감독은 30일엔 뇌경색으로 쓰러진 김동재 KIA 코치 돕기 자선 경기에 투수로 등판해 화제가 됐다. 현역에서 은퇴한 1969년 이후 41년 만이었다.

-현역 은퇴 후 처음으로 마운드에 올랐는데 느낌이 어떠셨나요.

“아직도 팔이 아파요(웃음). 던진 것 자체보다도 같은 야구인으로 의미있는 행사에 참여하게 돼 기뻐요. 일반인들이 그런 일을 당해도 완쾌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무슨 일이든 뭉칠 텐데, 하물며 플레이어(선수) 출신이 안타까운 일을 당해 이런 행사를 갖는 건 처음 아닌가요.”

-직접 공을 던져보시니 선수가 힘든가요, 감독이 힘든가요.

“선수는 잘 던지든 못 던지든 자기 할 일만 하면 되지만, 감독은 그렇지가 않아요. 경기에 관한 모든 것을 총괄하고, 고민해야 하는 위치가 아닌가요. 책임도 감독이 물어야 하고요.”

-한국시리즈 2차전 승리때 삼성 선발이 차우찬이었는데, 당시 SK라인업이 정규시즌 때 차우찬을 상대로 유일하게 승리를 거뒀던 라인업이랑 똑같았어요. 데이터인가요, 징크스인가요.

-“만약 이재원이 엔트리에 있었더라면, 이재원을 3번 타자로 기용하고 싶었어요. 물론 9월19일 차우찬에게 우리가 딱 한번 승리했던 선발 라인업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이재원이 있었더라도 전체적인 틀은 비슷하게 가져갔겠지만요. 데이터에 기반한 징크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

-양승호 감독이 롯데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OB 시절 제자가 5명이나 프로야구 감독이 됐는데 어떠신가요.

“물론 뿌듯하고, 젊은 사람들이 잘 해나가는 모습도 보기 좋아요. 하지만 나이 든 감독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워요. 사람의 커리어라는 것은 무시하면 안 돼요. 특히 이런 세계에서는 경험이 아주 중요해요.”

-김광현이 탈삼진 타이틀에 도전하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무너진 뒤 ‘일구이무’(一球二無ㆍ 공 하나에 기회는 한 번밖에 없다)의 뜻을 깨달았다고 했는데요.

-“그랬나요? 2006년 말 부임 후에 확실히 지금의 SK 선수들이 달라지긴 했어요. 그러나 사람은 늘 아쉬움을 가져야 해요. 순간 순간 아쉬움을 가져야 발전할 수 있어요. 그런 게 있어야 더 노력할 수 있어요.”

-지난해 KIA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아쉽게 패한 뒤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고,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야구는 인생과 같아요. 야구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어요. 야구는 사회 생활보다도 더 어렵죠. 한번의 플레이는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야구를 통해 사회적인 교훈과 메시지를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관리야구’의 대명사에서 이번 한국시리즈를 통해 ‘믿음의 야구’라는 말을 들으셨어요.

“표현하기 나름이겠지만, 무조건적인 믿음이란 건 없어요. 이승호(배번 37번)에게 기회를 줬던 것도 분명히 확률이 있으니까 그랬던 겁니다. 막연함 속의 믿음이란 없어요. 믿음이라고 하는 건 확률 속에서 나오는 거죠.”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곧 시작되는데, 감독님 가슴에 달린 태극마크를 보고 싶어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허허, 기회가 된다면요.”

인천=성환희기자 hhsung@hk.co.kr

■ 김성근, 재일동포 출신 에이스… 6개 프로팀 감독 거친 최고의 명장

파란만장, 우여곡절. 김성근(68) SK 감독의 야구인생을 요약할 수 있는 말이다.

광복 이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가쓰라 고교 시절이던 1959년 재일동포 학생 야구선수로 처음 모국땅을 밟았다. 고교 졸업 후엔 사회인 야구팀인 교토상호차량에서 뛰다가 60년 동아대에 스카우트됐다. 동아대를 중퇴한 후 61년 교통부에 입단해 한국에 정착한 김 감독은 기업은행 창단 멤버로 68년까지 활약했다. 빠른 직구를 주무기로 한 왼손투수로 62년 제4회 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회 때 대표팀에 선발돼 준우승을 이끌었다. 63년 11월13일 대통령배에서 볼넷 1개만 내 주며 노히트노런을 기록했고, 64년 실업 연맹전에서 다승 공동 2위(20승5패)에 오르는 등 선수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69년 부상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뒤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중소기업은행, 충암고, 신일고 감독으로 아마 야구에 투신한 김 감독은 75년 제11회 아시아 선수권 때 대표팀 코치로 참가, 우승을 이끌며 체육훈장 기린장을 받았고, 77년 봉황기에서 충암고를 창단 9년 만에 전국 대회 우승으로 이끌었다. 81년에는 신일고도 정상에 올려 놓았다.

프로야구 지도자로 입문한 82년 OB 창단 투수코치를 시작으로 태평양, 삼성, 쌍방울, LG, SK 등 6개 팀 감독을 맡았다. 만년 하위권이었던 태평양(89년ㆍ3위)과 쌍방울(96년 2위, 97년 3위)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고, 2002년엔 LG의 사령탑으로 준우승을 이끌었다.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 인스트럭터를 거쳐 2007년 SK 사령탑으로 국내에 복귀했고, 첫 해 SK의 창단 첫 우승을 일궈냈다. 2008년에 2연패를 달성했고, 지난 시즌엔 KIA와 7차전 접전 끝에 아쉽게 놓친 우승컵을 올 시즌 되찾았다. ‘만년 2인자’꼬리표를 떼고, 프로야구 최고의 명장으로 우뚝 선 김 감독의 인생 여정은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는 평을 얻고 있다.

인천=성환희기자 hhsung@hk.co.kr

■ 김성근 SK 감독 약력

1942년 일본 교토 출생

1972~1975년 기업은행 감독

1975년 체육훈장 기린장(아시아선수권 코치로 준우승)

1976~1979년 충암고 감독

1979~1981년 신일고 감독

1984~1988년 OB 감독

1989, 1990년 태평양 감독

1991, 1992년 삼성 감독

1996~1999년 쌍방울 감독

2001, 2002년 LG 감독

2007년~ SK 감독

2008년 프로야구 올스타전 승리감독상

2007, 2008,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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