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0일(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 하얏트호텔의 코리아하우스. 이규혁(32ㆍ서울시청)은 취재진 앞에서 흐느껴 울었다. 4전5기에 나선 밴쿠버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이규혁은 500m 15위, 1,000m 9위에 그쳤다. 대회 직전까지 최고 컨디션이었음에도 지독한 올림픽 악연 탓에 빈손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이규혁은 “안 되는 걸 도전한다는 게 슬펐다”고 했다.
그로부터 8개월 뒤, 이규혁은 보란 듯이 건재를 과시했다. 은퇴를 고민하다가 “한 시즌만 더” 쪽으로 마음을 굳혔고,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이규혁은 29~31일 서울 공릉동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5회 전국남녀종목별빙상선수권대회 겸 국가대표선발전에서 500m 3위, 1,500m 2위, 1,000m 2위에 올랐다. 500m에서는 2위까지 주어지는 동계아시안게임(내년 1월 카자흐스탄) 출전권을 놓쳤지만, 1,500m에서 2003년 아오모리, 2007년 창춘에 이어 아시안게임 3연패를 노리게 됐다. 1,000m는 아시안게임 종목에서 빠졌다.
31일 1,000m를 1분10초54로 마친 이규혁은 “스피드스케이팅을 20년째 하고 있지만, 이번 선발전이 가장 힘들었다. 후배들이 너무 잘한다. 어느 종목이든 편안하게 1등 한다는 생각은 접어야겠다”고 말했다. 이규혁은 그러나 “그만큼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후배들만 이기면 다른 나라 강자들도 이길 수 있다는 얘기기 때문에 플러스 요인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1,500m에서 대표로 뽑힐 거라는 확신은 솔직히 없었다”고 밝힌 이규혁은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어하는 종목이 1,500m다. 나이는 들었지만, 체력이 열세라는 생각은 없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서 웃었다.
이규혁은 다음달 12일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월드컵 시리즈 1차 대회 출전을 시작으로 2010~11시즌을 맞는다.
양준호기자 pir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