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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기우뚱한 균형] 북한 붕괴, 입에 담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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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기우뚱한 균형] 북한 붕괴, 입에 담지 않기

입력
2010.10.31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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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전 ‘조선이 빨리 망했으면’이라는 가정을 북한 문제와 연결시킨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빨리 무너지면 좋을 텐데’라는 가정법은 사실 한가하거나 시시껄렁한 공상은 아니다. 생명이나 조직이 붕괴하는 속도에 대한 상념이나 정념은, 묘한 일인데, 나이가 들수록 더 활발해지는 듯하다. 그런 가정을 하고 상상을 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남은 시간을 정리하는지 모른다.

북한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보자. 남한이 지원한 쌀을 북한이 군량미로 비축을 하므로, 지원에 엄격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수적인 것이라고 해 보자. 그와 달리, 일반적으로 너그럽게 지원을 해야 한다는 소위 햇볕정책은 진보 쪽의 생각에 가까웠다. 둘 사이 논란의 핵심에는 북한 군량미 비축 규모에 대한 물음이 있다. 얼마 전 여당 지도부가 그 규모가 100만톤에 이른다고 말했는데, 사실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사실은 밝히기 어려운 문제에 속할 듯하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 사실에 근거해 북한을 압박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냐는 물음이 따로 존재한다. 너무 압박할 경우, 심각한 긴장과 갈등이 생길 터이니 말이다. 이제까지는 나도 북한 정권의 갑작스러운 붕괴는 통일에 도움이 안 된다는 쪽에 동의했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너무나 큰 혼란이 올 것이니까. 그러나 ‘3대 세습’을 지켜보면서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북한은 점점 남한과 이질적인 사회가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재정권이며 부패도 심하다. 과거 동독 정권은 서독 주민이 동독 돈으로 일정 금액 환불해서 동독 안에서 쓰기만 하면 방문을 기본적으로 허용했다. 돈과 개방이 서로 잘 교환된 셈이다. 그와 달리 북한정권은 이산가족의 방문조차도 제대로 허용하지 않는 폐쇄적 정권이다. 이렇게 이질적이며 부패한 정권이 오래 지속하는 것도 통일에 좋을 리가 없다. 과도하게 이질적인 사회들은 서로 합쳐도 오히려 도움이 안 될 수 있다. 특히 왜곡된 상황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어쩔 수없이 사회병리적 상처를 간직하게 되고 따라서 한 동안 일그러진 행동을 하기 쉽다.

그러므로 갑작스러운 통일이 좋지 않다는 말이 일리는 있지만, 이질적이며 부패한 체제가 안정적으로 지속하기만 바라는 일도 무책임한 일이다. 북한이 빨리 붕괴하기만 바라는 관점이 단선적이라면, 북한의 안정적인 지속을 바라기만 하는 관점도 그 못지않게 단선적인 셈이다. 전자는 폭력에 너무 의존하고, 후자는 폭력을 너무 무시한다.

어쨌든 북한이 빨리 붕괴하는 경우를 입에 담는다면, 미숙한 하수의 정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섣부르게 붕괴를 입에 담지는 않더라도, 통일에 대한 준비는 잘 하는 길이 있다. 북한이 개방하도록 유도하고 돕자. 남북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남한이 북한에 대해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남한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할 경우, 북한은 점점 중국에 가까워진다.

여기서,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순간을 환기해보자. 동독 주민들의 체제 불만이 커지는 정도는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눈에 보이는 것이었지만, 장벽의 붕괴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났다. 어떤 점에서는 그런 갑작스러운 붕괴가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드러내서 말하기 어려운 일’에 속한다. 그러니 한편으로 개방을 유도하면서도, 동시에 폭력적인 상황에 대비하는 게 좋을 듯하다. 말하는 입과 행동하는 손발이 따로 움직이는 상황이다. 입으로 붕괴를 말하기보다, 손발로 대비하기.

물론 북한이 실제로 개방을 하는 길도 남아있다. 다행스럽게 보이지만, 그 과정이 오래 간다면 여러 복병들이 생기고, 어쩌면 더 복잡할 수 있다. 부패를 안고 개방만 하기는 어려우니까. 이 어쨌든 이 경우에도 남한의 입과 손발은 따로 움직여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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