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대 중간선거를 보면 흥미로운 게 있다. 집권 후 첫 중간선거가 다수당에 대부분 패배를 안겨줬지만, 정국을 수습하는 과정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행보가 정반대였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선거에 패한 뒤 예외 없이 “잘못했다”며 이전의 공약과 정책을 뒤집었다.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상ㆍ하원을 모두 내준 빌 클린턴 대통령은 “중도로!”를 외치며 오른쪽으로 클릭을 조정했다. 그토록 강조했던 건강보험개혁, 동성애 권익보호는 선거 후 한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지미 카터 대통령도 78년 중간선거에 패하자 각료 전원을 경질하고 ‘중도’로 변신했다.
공화당은 달랐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82년 중간선거에 패했지만 성장우위의 정책 등 기존 방향을 고수했다. 아버지 부시, 아들 부시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왼쪽으로 가기는커녕 더 강력히 우파정책을 밀고 나갔다. 선거에 나타난 민심은 안중에 없다는 투였다.
선거 후 다른 길 간 민주ㆍ공화당
왜 이렇게 달랐을까. 한 미국언론은 이렇게 분석했다. “민주당은 실용과 정책을 우선하기 때문에 민심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노선을 수정하고 타협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화당은 이념과 명분으로 뭉친 정치집단이어서 선거에 졌다고 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기저에는 민주당이 정치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반면 공화당은 ‘냉소적’으로 보는 기류가 깔려 있다. 민주당은 꺾이는 대신 유연함을 택한 반면 공화당은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다른 이유는 또 있다. 공화당은 ‘중도’라는 공간을 믿지 않는다. 정치에 가운데는 없다고 본다. 중도로 희석하는 순간 리더십과 좌표를 모두 잃는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패배는 기정사실처럼 돼 있다. 그러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민주당의 ‘전통’을 따라야 할까. 개인적으로 공화당의 완고함을 벤치마킹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첫 중간선거는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권력 견제심리에 더 좌우된다. 특히 전임 정권에서 물려받은 최악의 경제위기가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린 이번 선거는 더욱 그렇다. 오바마 대통령이 바뀌어야 할 만큼 잘못된 정책을 찾기 어렵다.
최후의 보루는 유권자의 신뢰
그러나 전제가 있다. 유권자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권자를 탓하는 것은 기업이 물건을 사지 않는다고 소비자에게 화를 내는 것과 똑같다. 염려스럽게도 오바마 대통령의 최근 연설을 보면 유권자에게 책임을 넘기는 듯한 발언이 많다. ‘두려움’ ‘공포’ ‘불확실’ 등의 표현을 써가며 “유권자가 판단을 잘못하고 있다”고 탄식한다. 9월에는 잡지 과의 인터뷰에서 “진보세력이 선거에 무책임하게 무관심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지지세력까지 폄하해 파문을 불렀다. 오바마 대통령만이 아니다. 재선이 극히 불투명한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누군가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다”는 면피성 발언을 해 손가락질을 받았다. 2004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존 케리 상원의원이나 카터 대통령도 선거가 임박하자 “진실이 먹히지 않는다”, “신뢰의 위기” 등을 입에 올렸다.
정책을 고수하건 바꾸건 흔들리지 않는 출발점이 돼야 하는 것은 국민의 신뢰이다. 선거에 지고, 국민의 믿음까지 잃는다면 그 땐 정말 끝이다. ‘네 탓이오’를 외치기에 바쁜 오마바 대통령과 민주당 후보들은 60여년 전 “The buck stops here(책임은 나에게서 멈춘다)”라고 한 대선배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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