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가 대기업에 이어 정치인들의 불법 정치자금 관련 비리까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1년 4개월 만에 칼을 빼 들자, 마치 신호를 기다렸다는 듯 전국 검찰조직이 정ㆍ관ㆍ재계를 겨냥한 수사대열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형국이다.
선봉에 선 것은 서울서부지검이다. 서부지검은 대검 중수부가 수사를 재개한 지난 21일 태광그룹 비자금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이선애(82) 태광 상무의 자택과 은행 대여금고를 압수수색했다. 앞서 지난 달 서부지검은 한화그룹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대규모 사정수사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뒤이어 태광그룹 본사와 이호진 태광 회장의 빌라, 서울지방국세청, 태광의 주거래은행들, 한화호텔&리조트 등을 차례로 조사했다.
서울중앙지검에서도 지난 28일 현 정권의 실세 기업인이자 '살아있는 권력'으로 불리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대우조선해양의 협력사인 임천공업에서 40억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가 있는 천 회장은 두 달 전 출국한 뒤 검찰소환을 계속 거부해왔으나, 이번 주말 귀국해 수사에 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날 창원지검은 뇌물수수 혐의로 민주당 최철국 의원의 경남 김해 사무실을 동시에 뒤졌다. 창원지검은 소방시설업체 사장 김모(52)씨로부터 한국전력에 납품로비를 하는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이르면 다음 주 최 의원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최 의원의 보좌관이 김씨로부터 받은 3,800만원을 최 의원에게 전달했는지, 최 의원이 보좌관의 돈 수수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사정수사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떠오른 곳이 서울북부지검이다. 북부지검은 최근 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가 현역 국회의원 30여명을 상대로 처우개선을 위해 입법 로비를 벌인 혐의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2008~2009년 청원경찰법 개정 당시 청목회 로비대상에 오른 의원들이 적게는 500만원, 많게는 5,000만원을 챙긴 것으로 보고 해당 의원들의 소환일정을 검토 중이다.
앞서 북부지검은 6ㆍ2지방선거를 앞두고 출마자에게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민주당 김희선 전 의원을 지난 26일 구속기소했으며, 약 5,000만원의 불법 후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 장광근 의원을 다음달 초 소환 조사하기로 했다.
지난 1년여는 검찰에게 수난의 연속이었다. 박연차 수사의 악몽을 채 떨치기도 전에 '스폰서 검사' 특검에 '그랜저 검사'논란까지 이어졌다. 급기야 검찰 무용론, 대검 중수부 폐지론까지 등장하며 최악의 위기에 몰렸던 검찰은 결국 "유일한 해법은 엄정한 수사"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현 정부가 정권 후반기 화두로 내세운 '공정사회론'이 수사에 원동력을 제공했다는 것이 대체적 분석이다.
정ㆍ재계에선 정치적 논란이나 기업활동 위축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검찰이 서둘러 칼을 거두지는 않을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잘못된 기업ㆍ정치관행이 국민에게 끼치는 폐해가 막대하다"며 "비리가 드러나는 대로 수사한다는 원칙으로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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