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원동력으로서 타악기와 컴퓨터는 클래식 음악이 뒤늦게 한 식구로 받아들인 악기다. 그러나 그것들을 빼놓고 현대성을 논하기란 난망이다. 그 존재감을 웅변할 무대가 잇달아 열린다.
컴퓨터 아티스트 아링의 '멍'
컴퓨터에는 증식을 거듭할수록 원본을 분쇄하도록 돼 있는 반복적 작동이 있다. 전산학 용어로 '멍(mung)'이라 한다. 자신을 부정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 가는 이 시대 전위예술의 상징으로 손색없다. 컴퓨터 아티스트 아링(본명 이은영ㆍ37)씨의 새 무대 이름이 '멍'이다.
'악몽(樂夢)'이라는 부제를 단 무대는 영화 '서편제'의 소리꾼 오정해씨가 펼치는 구음이 중심이다. 빛, 소리, 의상, 몸짓 등 원초적 소재들이 날것으로 등장해 삶과 죽음의 여정을 그린다. 맥스-MSP 등 실시간으로 구동되는 컴퓨터 음향 프로그램, 컴퓨터로 변조된 어쿠스틱 음향 등의 재료에다 영상과 신체극 등 시각 소재가 혼합되는 70여분 간의 무대다. 5명의 클래식 주자가 빚어내는 선율, 1명의 무용수가 만들어내는 움직임만이 인간에게 할당된 분량이다.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컴퓨터 음악 등 기계가 생산하는 음 현상이 나머지를 채운다.
동아방송예술대 영상음악과 교수인 이은영씨는 2004년 '아링(我Ring)'이란 예명으로 앨범 '사운드 다이어리'를 발표해 CF에 영감을 제공하는 등 현대 예술의 대중성을 입증해 왔다. 그는 "음에 대한 조작이 어떻게 진화해 가는가를 보여줄 이번 무대에서는 전위의 예술성을 강조하고 싶다"며 "공연장의 하드웨어 구축, 기업 후원 확보 등의 문제는 전위 예술이 항상 직면하는 문제"라 고 말했다. 서울예고와 미국 뉴욕대에서 함께 공부한 이승현(소프라노), 장선우(플루트) 등도 출연한다. 박하민 연출. 11월 3, 4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 (031)670-6815
앙상블 오푸스의 '열정'
기존 레퍼토리의 재해석, 현대 작곡가의 레퍼토리 발굴 등 진보적 행보로 관심을 끌고 있는 앙상블 오푸스가 내년 아시아, 유럽 순회연주 등 세계 데뷔를 앞두고 펼치는 프리뷰 콘서트 '열정' 역시 현대성을 화두로 내건다. 라벨, 슈만의 작품과 나란히 배치된 한국 작곡가 류재준씨의 작품이 눈에 띈다. 2002년작 '타악기를 위한 파사칼리아'와 지난해 씌어진 '초여름' 등 두 곡이다.
"마림바, 비브라폰, 실로폰, 팀파니, 톰톰, 탬버린, 우드 블록, 심벌즈 등을 번갈아 연주해요. 마음을 열고 들어달라는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류재준의 작품을 연주할 타악 주자 한문경(25)씨의 말이다. 파리국립음악원에 재학 중인 한씨는 '현재를 반영하는 현대 작곡가의 레퍼토리를 발굴한다'는 오푸스의 창단 이념을 구현하려 한다.
원래 6명이 연주하도록 된 곡이지만 무대에서는 녹음과 실연이 어우러진 소리로 대체된다. 라벨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 등 실내악 작품들도 함께 연주한다. 백주영, 김상진, 백나영 등 협연. 11월 13일 세종체임버홀. 1544-5142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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