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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영란' 삶은 항구다… 사랑이 오고, 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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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영란' 삶은 항구다… 사랑이 오고, 떠나고…

입력
2010.10.2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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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지음

뿔 발행ㆍ269쪽ㆍ1만1,000원

아들과 남편을 잇따라 잃고 재개발을 앞둔 집에 틀어박힌 ‘나’와, 불륜을 저지른 탓에 이혼하고 홀로 사는 소설가 이정섭. 소설가 공선옥(47ㆍ사진)씨의 일곱 번째 장편소설 은 이들 남녀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영세한 출판사를 경영하던 남편의 인세 빚을 갚으려고 나가 정섭에게 연락하면서 만난 두 사람은 그날 밤 정섭의 죽은 친구를 조문하러 함께 목포에 갔다가 술자리에서 헤어진다.

여관에서 자살하려다 실패한 나는 여관 이름인 ‘영란’을 제 이름으로 삼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첫눈에 그녀에게 끌렸음에도 술김에 혼자 상경했던 정섭은 여행기를 쓸 핑계로 다시 목포로 내려가 그녀를 찾아 나선다. 소설은 이들 남녀의 상황을 번갈아 보여주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란과 정섭을 비롯, 이 소설엔 생의 슬픔과 고독에 겨운 이들이 그득하다. 죽은 아내(엄마)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방황하는 영란여관 주인집 부녀가 그렇고, 죽은 형의 아들을 맡아 키우면서 외지에서 온 연상의 이웃 영란에게 끌리는 노총각 완구가 그러하며, 고문에 못 이겨 한 허위 진술 때문에 친구가 간첩으로 몰려 죽었다는 죄책감과 죽은 친구의 부인을 향한 오랜 연정을 품고 홀로 늙어가는 정영술 역시 그렇다. 아버지와 밥집을 하는 어여쁜 벙어리 처녀 모란, 사랑을 쫓아 홀어머니를 두고 가출을 반복하는 인자가 겪는 외로움도 만만치 않다.

저마다 한가득 슬픔을 안은 이들이 사랑을 찾아 나선다. 영란여관 주인 김헌은 실연당한 여가수 태숙와 재혼해 함께 카페를 차리고, 말도 없이 거처를 옮긴 영란 때문에 상심했던 완구는 모란에 대한 사랑으로 상처를 치유해간다. 머물고 떠나기를 거듭하는 그네들의 관계는 배들이 무시로 항해하고 정박하는 항구도시 목포의 풍경을 닮았다. 소설에 여러 번 언급되는 가수 이난영의 노래 제목대로 ‘목포는 항구다’. 삶은 그런 목포를 닮았다.

영란은 목포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가족을 잃은 슬픔을 극복해가고 마침내는 자기긍정이라는 구원에 도달한다. “나도 다른 누구보다 나를 원망하고 살았는데, 이젠, 내가 그래도 잘살았구나… 그러니까, 그제사 내가 나한테 고맙고 내가 막 이뻐지고… 그러더라고.”(200쪽) 정섭이 얻은 깨달음도 다르지 않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거야.”(191쪽)

작가 공씨는 영란이 인자와 함께 차린 식당을 정섭이 우연히 찾는 장면으로 소설을 끝맺는다. 재회한 그들이 설령 맺어지지 못한들 어떠랴 싶다. 그들의 마음엔 이미 너른 바다가 들어섰을 테니. 수다한 인물들의 적절한 조율과 말맛을 살린 목포 사투리 구사가 특히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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