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원 지음ㆍ고미숙 옮김
역사를 돌이켜 보면 오래도록 성세를 이어온 국가나 기업은 자신보다 더 나은 문물과 타인의 충고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지만, 자신만의 의견을 고집한 국가나 기업은 오래 가지 못했다.
필자도 넓은 식견을 갖추고, 열린 마음과 편견 없는 시선으로 일해야 한다고 마음 먹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타인의 충고가 듣기 싫고 편안한 현실에만 안주하고 싶을 때마다, 필자가 떠올리며 마음에 자극을 받는 책이 있다. 연암 박지원의 다.
열하일기는 1780년(정조 4년), 당시 청나라 황제였던 건륭제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에 박지원이 개인수행원 자격으로 5월부터 10월까지 약 6개월간 연경을 거쳐 열하까지 중원대륙을 다녀온 일정을 기록한 기행기이다.
열하일기는 당시 청나라의 역사, 경제, 문화, 정치 등을 망라한 백과사전 같으면서도, 조선시대 최고의 문장가라는 박지원만의 인간적인 유머와 해학적인 문체가 더해져 당시 청나라가 바로 눈앞에 와있는 듯 생생하게 읽혀진다.
박지원이 한양을 떠날 때 행랑에는 벼루와 붓, 공책 등만 간단히 가지고 갔지만, 돌아올 때는 보고 들은 것을 꼼꼼히 기록한 메모와 필담지가 두 개의 큰 짐 덩어리가 되어 일행들이 ‘무슨 물건을 그렇게 많이 샀느냐’ 물어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다고 한다. 해외여행을 가면 무엇을 보고 느끼냐보다, 무엇을 사느냐에 급급한 우리 모습이 비쳐져 부끄러워진 대목이었다.
박지원이 40대 중반의 나이에 열하일기를 썼다. 적지 않은 나이와 사대부라는 지위에 안주하지 않고 청나라를 기행하며 벽돌제조과정, 난방방식, 말타기, 의복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고 꼼꼼하게 기록한 박지원의 뜨거운 열정과 날카로운 분석력은 놀랍다.
무엇보다 사물을 인식함에 있어 선입견에 좌우되지 않고 변화무쌍한 현실세계를 편견 없이 탐구하려는 개방적 자세를 강조했는데, 자기중심적인 편협한 사고로부터 탈피할 것을 역설하는 박지원의 주장은 2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저마다 경쟁력 강화를 부르짖는 요즘, 무엇보다 준비해야 할 것은 현실 안주를 벗어나 편견 없는 시선과 나보다 나은 것은 언제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재우 손해보험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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