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호소력이 큰 규범인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개념이다. 예컨대 미국의 네오콘들은 인권의 평화주의적 본성과는 거리가 먼 제국주의적 방식으로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인권 수호’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중국이나 북한은 국제사회가 그들을 인권의 잣대로 비판하면 ‘중국식 인권’, ‘우리식 인권’이 따로 있다고 강력하게 반박한다. 과연 인권에 보편적인 잣대란 있는 것일까.
장은주(46ㆍ사진) 영산대 법대 교수는 (새물결 발행)에서 “인권 이념 근저의 규범적 원칙에 대한 잘 반성된 철학적 이해는 인권의 실현을 위한 실천에서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2003년부터 최근까지 인권을 주제로 쓴 글 11편을 모은 이 책은 서구에서 발전된 인권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논의를 정리하고, 그것이 어떻게 한국과 같은 곳에서도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논변하고 있다.
그가 극복하려는 인식틀은 인권에 대한 ‘동서양 이분법적 접근’이다. “철학적으로 서구 자유주의 사상에서 기원하는 인권 개념은 일차적으로 개인의 문제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공동체의 조화와 질서를 중시하는 동아시아적 문화전통 때문에 인권을 주장하면 ‘너는 왜 그렇게 서구적으로 생각하냐’는 비판을 받기 일쑤지요.”
이런 문화적 배경의 차이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둔감하다는 것이 장 교수의 분석이다. 예컨대 촛불시위 때 보수우파들은 집회 및 결사의 자유 같은 기본적 인권보다 ‘공공의 질서’가 중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탄압을 주장했다. 반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자 조직 보호를 이유로 은폐를 시도한 전교조의 사례는 진보 진영에서도 인권의 중심이라 할 개인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왜소한가를 상징한다고 본다.
장 교수는 “인권에 대한 동ㆍ양의 인식 차를 극복하기 위해서 인권을 ‘사회권’이라는 차원에서 인식하자”고 제안한다. 사회권이란 주거, 건강, 교육 등과 관련된 일종의 복지권으로 이를 중심으로 인권을 이해하면 개인의 신체ㆍ재산의 보호를 골자로 한 ‘자유권’중심의 서구적 인권 논의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모든 사람을 평등한 주체로 존중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인 자유를 공평하게 보장해야 한다”며 “그런데 그 자유는 그것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사회적ㆍ물질적 조건이 있어야 제대로 향유될 수 있기에 사회권을 중심을 놓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철학과 시절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했다가 구 소련 몰락 후 독일로 유학, 프랑크푸르트의 요한볼프강괴테대에서 ‘하버마스와 그람시의 시민사회론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장 교수는 사회철학, 민주주의 철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서양과의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권이 우리에게 설득력 있고 보편적인 가치가 있음을 입증함으로써 인권 현실을 개선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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