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의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재판부가 과거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 그 과오에 대해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하면서, 무죄를 선고합니다.”
전두환 정권시절 공안조작 사건에 연루돼 억울하게 5년 8개월간 옥살이를 한 구명서(58)씨가 24년 만에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1982년 서울 명동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던 구씨는 당시 혈기왕성한 30대 초반의 사업가였다. 그는 국내사업이 잘 되면서 자신감이 붙자, 자신의 전공분야인 ‘비빔밥’을 해외로 수출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마침 단골손님이 재일동포 사업가인 기모씨를 구씨에게 소개해줬고, 구씨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해부터 85년까지 다섯 차례 일본을 찾아가 기씨에게 사업자금을 요청하기도 하고 일본 사업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구씨는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도 일본에 갈 때면 음식 엑스포를 찾는 등 그 나라의 문화를 공부하고 주변 상권을 연구했다.
그러나 구씨의 꿈과 자유, 명예는 1985년 9월 16일을 기점으로 모두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나타난 보안사령부의 수사관들은 그를 불법체포하고 40여일간 구금하면서 고문을 통해 “조총련계 공작원에게 포섭돼 간첩활동을 했다”는 허위 자백을 받아 냈다. 결국 구씨는 이듬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29일 구씨의 재심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김인욱)는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 사건으로 구씨는 수년간의 세월 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직장 등 소중한 인생 대부분을 잃었다”며 “권위주의 시대에 국가가 범한 과오와, 이를 바로잡지 못한 당시 사법부의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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