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개인의 기본권보다는 군 조직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며 2년여 만에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 사건'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판단 자체를 유보해 앞으로도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지웅(29)씨 등 전ㆍ현직 군법무관이 2008년 헌법소원을 냈을 때 가장 뜨거운 쟁점은 국방부의 조치가 개인의 책을 읽을 자유, 즉 헌법에서 보장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지 여부였다.
그러나 헌재는 국방부장관 및 육군참모총장이 "군내 불온서적 차단대책을 강구하라"며 지시한 행위는 이번 헌법소원의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며 각하했다. 장관 등의 지시를 받는 상대는 예하 부대장이고, 일반 장병이나 군법무관은 부대장의 지시에 따르는 자들이기 때문에 '직접성'요건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헌재가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 및 이 책들의 군내 반입 금지조치를 합헌으로 봤던 핵심 논리, 즉 '군의 특수성'을 인정한 것과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장관 등의 지시가 부대장을 상대로 했다 해도, 군 특성상 부대장은 이들의 지시를 받아 그대로 장병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기에, 실제적ㆍ현실적으로 봤을 때 사병을 대상으로 한 지시와 같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공현 송두환 재판관도 반대의견에서 "상명하복을 원리로 하여 규율내용을 즉시 강제할 수 있는 군조직의 특성과 장관 등의 지시로 인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 실효적 구제 수단의 유무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헌재가 국방부의 재량권을 어디까지 허용할지에 대해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복무규율조항이 규정한 불온도서란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해하거나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할 내용으로서, 군인의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도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방부가 불온서적이라고 지정한 23권의 도서 중 등은 정부기관과 대표적인 학술단체, 언론기관 등으로부터 엄격한 심사를 통해 우수 또는 추천도서로 선정돼 권장도서 목록에 올라 있는 도서들이다.
이에 대해 노희범 헌재 공보관은 "이번 결정은 선정된 책이 불온서적인지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관련 규정의 합헌 여부를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의견을 낸 이공현 송두환 재판관은 결정문에서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도서를 분석했다.
두 재판관은 " 등 이들 책들은 국가예산의 지원으로 공공도서관에 비치된 도서로 정부ㆍ학계ㆍ문화계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국가의 존립과 민주주의체제를 해하는 도서로서 군인의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도서에 해당한다고는 도저히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비록 국방부의 불온도서 지정은 "합헌"이라고 결론이 났지만,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해당 규율에 나온 '불온'의 개념은 추상적인 측면이 있고, 불온서적을 지정하는 절차와 규정 등도 빠져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방부가 해당 규율을 보다 명확히 정돈할 필요가 있다는 권고인 셈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논평을 내고 "국방부장관의 불온도서 지정은 반시대적인 것이고, 국가의 안보가 국민의 '책꽂이'까지 통제하는 것은 전체주의 논리"라며 헌재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이번 헌법소원을 내고 파면 등 징계처분을 받은 전ㆍ현직 법무관들은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징계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법정 소송을 벌이고 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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