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보던 야동이 교실 수업용 TV로 흘러나와(한국일보 19일자 14면) 물의를 빚은 경북 안동시의 모 사립여고에서 인턴교사와 일부 학생이 사건 관련 학생들에게 해당 교사 구명을 위한 허위 설문지를 강요해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경북도교육청은 야동 TV 방영에 대한 진상조사를 위해 이 여고를 방문하고도 학생 등을 상대로 한 확인 절차는 거치지도 않은 채 학교의 해명만 듣는 데 그쳐 봐 주기 조사라는 지적이다.
이 여고 1학년 6반 학생 31명 중 29명은 22일 문제가 된 김모(55) 교사의 명예 회복과 진상 규명을 요청한다는 명목으로 작성된 설문지에 서명했다. 설문지에 따르면 학생들이 TV로 본 것은 동영상이 아닌 사진 몇 장에 불과하다는 것. 서명된 설문지는 언론사에 배포됐다.
이 설문지는 이 여고 인턴교사 M씨가 교장 승인 없이 학생 한 명을 불러 관련 학생들의 서명을 받아 오라며 준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학생이 사실 왜곡에 항의해 서명을 거부하자 서명을 주도한 학생들이 협박과 폭언을 하며 집단 따돌림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명 거부 학생의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 교장에게 이 같은 사실을 항의하자 여고는 서명을 주도했던 학생을 권고전학시키기로 하는 등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고는 M씨도 불러 조사했지만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고, 배후에 사주한 인물 역시 밝히지 못했다.
이 여고 상당수 교사들은 "학생과 관련된 사항은 담임교사와 협의하는 것이 기본이고, 학교와 관련된 업무는 교장이 승인해야 하는데도 인턴교사가 한마디 상의 없이 서명을 주도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여고 관계자는 "M씨가 '학생들이 먼저 찾아와 구명 방법을 상의해 도와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며 "설문지 작성에는 다른 배후가 있을 것 같지만 입을 다물고 있어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편 14일 사건 직후 이 여고 관계자가 조사한 결과, 김 교사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율학습을 하도록 한 뒤 자신은 교사용 컴퓨터로 20여초간 모 인터넷 카페의 야동과 스냅 사진을 감상했다. 이 영상은 컴퓨터 조작 실수로 교실 내 대형 TV에 그대로 방영됐다. 그러나 이 여고 교장은 "김 교사가 '수업시간에 메일이 들어와 확인하던 중 잘못 연결돼 사진 몇 장을 봤는데 이것이 TV에 떴다'고 해명해 경위서를 받고 엄중 경고했다"고 밝혔다.
도교육청은 20, 27, 28일 세 차례 이 여고를 방문, 조사를 벌였으나 학교 주장만 듣는 데 그쳤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을 만나 보지는 않았지만 학교의 해명과 당시 정황, 학생들의 설문 등을 참고로 했을 때 김 교사는 10초 정도 사진 4, 5장만 보는데 그쳤고, 곧 학생들에게 사과한 것으로 상황은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또 "학교 내부에 갈등이 많아 서로 상대 잘못을 부풀리는 과정에서 생긴 경미한 실수로 보고 도교육감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부모 김모(51ㆍ안동시 남문동)씨는 "도덕 수업시간에 교사가 교실에서 야동을 본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교내에서 학생들까지 부추겨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한 모습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며 "철저한 진상조사와 처벌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안동=권정식기자 kwonj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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