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압박용일까, 물증확보 차원일까. 아니면, 향후 수사 확대까지 염두에 둔 다목적 카드일까. 지금 이 시점에서 검찰이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의 사무실을 '뒤늦게' 압수수색하자, 그 배경은 물론 앞으로의 검찰 수사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압수수색을 '뒷북'이라고 보는 까닭은 자명하다. 통상 검찰의 압수수색은 수사 초반기에 최대한 빨리 이뤄져야 성과가 나오는데, 천 회장의 이름이 임천공업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거론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사정기관 주변에선 올해 초부터 천 회장 연루설이 떠돌았고, 지난 7월 초엔 천 회장의 세 자녀가 비상장기업인 임천공업 및 계열사 주식 18만여주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본보 7월14일자 12면)로 알려졌다. 이후 임천공업 압수수색(8월10일), 임천공업 이수우 대표 구속기소(9월16일) 등 검찰 수사의 주요단계마다 천 회장의 이름은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이 대표가 천 회장 관련 진술을 한 시점도 9월 중순~말 무렵이라는 점에서, 이번 압수수색은 한발 늦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의외로 검찰의 표정에선 여유가 읽힌다. 검찰 관계자는 "그 동안 (압수수색에 필요한) 절차를 밟아 왔고, 오늘 하게 된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이번 수사는 일단 내사가 워낙 탄탄히 이뤄진 데다, 지난 8월 공개수사에 나선 뒤에도 순조롭게 진행돼 왔다는 점에서 검찰이 천 회장의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때문에 지난 8월 일본으로 출국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하와이를 거쳐 다시 도쿄에 머무르면서 귀국을 미루고 있는 천 회장을 압박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압수수색 결과, 또 다른 비리 혐의가 포착될 경우 천 회장으로선 더욱 궁지에 몰릴 수 있기에 이쯤에서 귀국하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동시에, 그 동안 천 회장 주변 조사에 주력해 온 검찰이 이제는 천 회장 본인을 '정조준'하면서 결정적 물증을 찾겠다는 의도로도 풀이된다.
일각에선 "수사 확대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온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연임 로비 의혹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당초 천 회장과 이 대표의 금품거래에서 관련 의혹으로 제기된 게 바로 남 사장 연임 로비 의혹이었으나, 검찰은 "특별히 나타난 게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 18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대우조선해양 관련 의혹을 전반적으로 보고 있다"며 수사 확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사건 수사 착수 직전, 검찰 관계자가 "한두 달 만에 끝날 수 있는 간단한 사건이 아니다. 더 오래 갈 것"이라고 언급한 사실도 되짚어볼 만하다. 지난 19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산업은행(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이 ▦대우조선해양 자회사인 D사의 지분이 천 회장의 지인이 대표이사인 K사에 매각된 경위와 ▦남 사장의 해외 비자금 의혹 등을 집중 추궁한 것도 검찰로선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이번 수사는 천 회장 선에서 '꼬리 자르기'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검찰 수사대상이 된 대통령의 최측근이 해외에 장기체류하는 것은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되므로 이쯤에서 털고 가되, 더 이상의 수사 확대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교감이 있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베트남 출국시점(28일)에 맞춰 천 회장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본 출국 일정이 있는 이상득 의원도 천 회장과 접촉해 귀국을 종용할 계획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검찰 안팎에서는 천 회장 사법처리가 다음달 초를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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